"뜨거울수록 가린다"…길어진 폭염에 긴팔·리넨 매출 증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14 06:44

자외선·냉방 대응 '살안타템' 인기…버뮤다 팬츠·젤리슈즈도 부상


패션업계, 출고 횟수 늘리고 연중 판매 체제 가동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최근 몇 년 사이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화하면서 여름 패션의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한여름 패션의 대명사였던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대신 긴팔 셔츠와 카디건, 니트, 리넨 소재 의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강한 자외선을 피하면서 실내 냉방에도 대응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여름이 길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단순히 시원한 옷보다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갖춘 아이템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패션업계는 냉감 소재와 경량 소재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상품 출고 주기와 시즌 운영 방식까지 바꾸며 변화한 기후에 대응하고 있다.


◇ "덥지만 긴팔 입는다"…'살안타템'의 부상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름 패션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른바 '살안타템'의 확산이다.


과거 긴팔 의류는 여름철 비수기 상품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강한 자외선을 막고 실내 냉방에 따른 체온 저하를 예방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신사 스토어에서 지난 1∼10일 '살안타'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 증가했고 '살안타템'도 64% 늘었다. '냉감 이너' 검색량은 251%, '냉감'은 77% 증가했다.


실제 판매도 늘고 있다. 스파오의 대표 살안타템인 썸머 카디건과 썸머 골지 카디건 매출은 최근 한 달간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했다. 보브의 리넨 셔츠와 나일론 시어 점퍼, 니트 카디건 등 관련 제품 매출도 올여름 시즌 기준 184% 늘었다. 대부분 상품은 추가 생산에 들어갈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이는 폭염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피부를 가리는 옷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여름철 의류 선택 기준이 '노출'에서 '보호'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헤지스 린넨 셔츠헤지스 린넨 셔츠 [LF 사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티셔츠 대신 리넨·니트…여름 패션의 재편


소재와 스타일 변화도 뚜렷하다. 특히 리넨은 올여름 가장 강력한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과거에는 구김이 많고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최근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통기성을 동시에 갖춘 소재로 재평가받고 있다.


29CM에서 지난달 10일부터 한 달간 리넨 셔츠 거래액은 187%, 리넨 카디건은 273%, 리넨 니트는 294% 증가했다. 시어서커 셔츠 거래액도 181% 늘었다.


헤지스는 올해 봄·여름(SS) 시즌 리넨 셔츠 스타일 수를 작년보다 30% 확대했는데, 지난달 기준 리넨 셔츠 매출은 남성 제품이 50%, 여성 제품이 30% 증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니트의 부상이다. 니트는 전통적으로 가을·겨울 소재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코튼과 리넨 혼방, 성글게 짠 조직 등을 적용한 여름 니트가 인기를 얻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여름 패션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여름 니트'를 꼽았다. 지난 5월 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델라라나의 여름 니트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한섬이 운영하는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더캐시미어도 여름용 캐시미어와 레이온·울 혼방 니트 제품 품목 수를 지난해보다 20%가량 확대했고, 실제 봄여름 시즌 캐시미어 소재 의류의 판매량이 20%가량 증가했다.


이는 여름철에도 단정하고 차려입은 듯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과거 '시원함'만 추구했다면 이제는 '시원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옷'을 찾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델라라니 니트델라라니 니트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버뮤다 팬츠·메쉬 슈즈…"여름도 다양하게 입는다"


여름 패션의 변화는 하의에서도 나타난다. 무릎길이의 버뮤다팬츠와 종아리 중간 길이의 카프리 팬츠가 새로운 여름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짧은 반바지보다 단정하면서도 활동성이 뛰어나 출근복과 일상복 수요를 동시에 흡수하고 있다는 평가다.


여성복 브랜드 일라일이 출시한 카프리 팬츠의 일부 인기 사이즈가 조기 품절되는 등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헤지스 여성의 리넨 블렌드 버뮤다팬츠는 이달 1주차 기준 매출이 작년 대비 220% 증가했다.


신발에서는 통기성을 강조한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메쉬 플랫슈즈와 플립플랍, 젤리슈즈 등이 대표적이다.


무신사 스토어에서 지난 1∼10일 '쪼리'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증가했고, 쪼리 양말 검색량은 4천507% 급증했다


코오롱FnC의 슈콤마보니는 올여름 볼륨감 있는 주름 장식 샌들과 니트 소재 플랫슈즈, 젤리슈즈 등을 앞세워 여름 슈즈 수요 공략에 나섰다.


특히 젤리슈즈 6월 첫째 주 기준 판매량은 4주 전보다 약 4배 증가했으며, 통기성이 뛰어난 니트 소재 플랫슈즈와 방수 기능을 갖춘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젤리슈즈가 장마철과 휴가철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질바이질스튜어트의 메쉬 플랫은 초도 물량이 완판돼 추가 생산에 들어갔고 관련 제품군의 매출이 지난달에 전달 대비로 600% 증가했다.


슈콤마보니 젤리슈즈슈콤마보니 젤리슈즈 [코오롱FnC 사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길어진 여름에 패션업계도 전략 수정


기후 변화는 패션업계의 상품 운영 방식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계절별 상품을 정해진 일정에 맞춰 대량으로 공급했다면 최근에는 날씨 변화에 따라 공급 시기와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닥스골프는 여름 상품 출고 횟수를 기존 4차례에서 6차례로 늘렸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한 번에 투입하는 물량을 줄이고 공급 주기를 세분화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한섬은 민소매 이너류를 계절상품이 아닌 연중 판매하는 캐리오버 상품으로 전환했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에잇세컨즈는 반소매뿐 아니라 얇은 긴소매 티셔츠와 카디건 상품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봄·여름·가을·겨울로 구분되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상품 기획과 생산, 판매 전략 전반이 재편되고 있다"며 "소비자는 변화한 기후에 맞춰 옷을 고르고 기업은 변화한 소비 패턴에 맞춰 공급 체계를 바꾸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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