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조가 있는 풍경(15]) 어느 날
'어느 날'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 김상옥 (1920~2004)
◇ㅡ◇ㅡ◇ㅡ◇ㅡ◇ㅡ◇ㅡ◇ㅡ◇
김상옥 시인의 「어느 날」은 짧지만 깊은 인생의 깨달음을 담은 시조이다.
새 구두를 신은 딸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부모의 품에서 자식이 독립하여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순간이며, 세월이 흘러감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는 인생의 본질을 보여 준다.
젊은 날에는 가슴을 후비고 잠 못 이루게 하던 일들도 세월 앞에서는 결국 지나가는 것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 시는 큰 소리로 인생을 말하지 않는다.
딸의 뒷모습 하나를 통해 세월, 이별, 성장, 그리고 삶의 무상함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인생 전체를 깨달은 시."
김상옥 시인의 이 작품은 읽을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다.
젊은 날에는 붙잡고 싶었던 것들이 많지만, 세월이 흐르면 딸도 떠나고, 사랑도 떠나고, 기쁨과 슬픔도 모두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인생을 넓게 바라보는 달관의 경지로 읽힌다.
구두를 신고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 속에서 시인은 흘러가는 세월과 인생을 본다.
짧은 시 한 편이지만, 부모의 사랑과 세월의 무게, 그리고 삶의 무상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낸 명시라 할 만하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