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방출과 트레이드…포기하지 않고 꿈 이룬 '인간 고우석'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7-10 10:49

험난했던 MLB 도전기…LG 조건부 승낙-서울 시리즈 악몽으로 출발


4대1 트레이드 굴욕에 골절 부상, LG의 끈질긴 복귀 요청…그래도 계속 도전


10일 꿈의 무대 등판…임신한 채 육아와 뒷바라지한 아내에게 감사 인사


고우석, '아들과 함께'고우석, '아들과 함께' (영종도=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한 고우석이 9일 오후 스프링캠프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며 아들을 안아보고 있다. 2024.2.9 sab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23년 11월. 29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정상에 오른 LG 트윈스는 뜻밖의 발표를 했다.


마무리 투수 고우석(27)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진출 도전을 조건부로 승낙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의아해했다. 고우석은 구단 발표 전까지 MLB 진출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의 관심은 일찌감치 빅리그행을 선언했던 이정후(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만 쏠려 있었다.


게다가 고우석은 2023시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고, LG 구단에도 시즌이 끝난 뒤인 11월 말에야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MLB 진출 의사를 전했다.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일부 팬들은 이를 '치기 어린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LG 역시 예상치 못한 고우석의 요청에 계약 조건 등을 따진 뒤 보내주겠다는 '조건부 승낙'을 내렸다.


예상대로 고우석에게 입단 제의를 하는 팀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포스팅 마감을 이틀 남긴 시점에서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입단 제의를 했다.


샌디에이고가 내민 계약 조건은 LG와 고우석이 사전에 협의했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구본능 LG 구단주 대행이 "우리 선수가 도전하겠다는데 따지지 말고 도와줘라"고 지시하면서 고우석의 미국행은 급물살을 탔다.


고우석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넘어가 샌디에이고와 1+1년 최대 총액 940만 달러(약 141억7천만원)에 계약했다.


꿈을 이룬 듯했다.


홈런 허용한 고우석홈런 허용한 고우석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미국프로야구(MLB) 공식 개막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LG 트윈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페셜 경기에서 9회말 샌디에이고 고우석이 LG 이재원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있다. 2024.3.18 [공동취재] pdj6635@yna.co.kr


그러나 그의 앞엔 비단길 대신 길고 긴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우석은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 주전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고, 2024년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MLB 공식 개막 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개막 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샌디에이고와 친정 팀 LG와 연습경기가 치명타가 됐다.


당시 고우석은 후배 이재원에게 좌월 투런포를 허용하는 등 1이닝 동안 2실점 하며 고개를 떨궜고, 결국 샌디에이고 구단은 고우석을 개막 로스터 26명서 제외했다.


빅리그 도전 첫 시즌을 앞두고 국내 팬들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고우석에게는 상처였다.


빅리거로서 고척스카이돔 마운드조차 밟지 못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더욱 험난한 시간을 보냈다.


마이너리그에서 첫 시즌을 시작한 고우석은 개막 두 달 만에 트레이드되는 굴욕을 겪었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내야수 루이스 아라에스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4명의 선수를 내줬는데, 고우석이 그중 한 명이었다.


고우석은 이적한 지 한 달도 안 돼 방출 대기(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신분이 됐고, 어느 구단도 영입에 나서지 않았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고우석은 LG로 돌아오는 듯했다.


인터뷰하는 고우석인터뷰하는 고우석 (영종도=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한국 야구대표팀 고우석이 9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차 캠프지인 사이판 출국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1.9 mon@yna.co.kr


그러나 고우석은 또다시 도전의 길을 택했다.


마이애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다.


그는 마이애미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더블A까지 내려갔다.


가시밭길은 2025년에도 이어졌다.


그는 마이애미 빅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 선수로 합류했으나 오른쪽 검진 손가락 골절 부상으로 시범 경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해 6월 마이애미 마이너리그 산하 잭슨빌 점보슈림프에서 방출됐다.


빅리그는 물론 마이너리그에서도 입지를 잃은 듯 보이자 LG는 "고우석의 연락을 기다리겠다"며 복귀를 권했다.


그러나 고우석은 또 한 번 미국 잔류를 택했다.


FA 고우석은 2025년 6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디트로이트 마이너리그 생활도 쉽지 않았다. 그는 11월에 방출됐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1월 디트로이트와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며 끈질기게 버티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주변에선 '독하다'고 표현했다.


역투하는 고우석역투하는 고우석 (마이애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대 도미니카공화국 준준결승전. 6회 말 한국 투수 고우석이 역투하고 있다. 2026.3.14 mon@yna.co.kr


고우석은 마침내 빅리그 구장에서 공을 던졌다.


그런데 빅리거가 아닌 한국 야구대표팀의 선수로서였다.


지난 3월 마이애미 말린스의 홈구장,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에 한국 야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당시 고우석은 경기 후 "(마이애미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작년과 재작년, 이곳에 한 번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말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대표팀의 일원으로 빅리그 마운드를 밟았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MLB를 향한 도전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 5월 미국까지 찾아가 LG 복귀를 권유한 차명석 LG 단장의 제안도 정중히 고사했다.


LG는 "고우석이 미국 야구 도전을 멈추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더라. 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마침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고우석마침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고우석 [AP=연합뉴스]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불펜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미네소타 트윈스는 지난 6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고우석을 영입했고, 고우석은 8일 26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고우석은 10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타깃필드에서 열린 2026 MLB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홈 경기에서 그토록 바랐던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2-4로 뒤진 9회초에 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1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기록만 놓고 보면 평범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MLB 진출을 선언한 지 약 2년 8개월 만에 거둔 값진 결실이었다.


고우석은 데뷔전을 치르기 전 소속사를 통해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둘째를 임신한 채 혼자 아이를 돌보면서도 늘 괜찮다고 말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건 모두 아내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2023년 1월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 이종범 회장의 딸이자 이정후의 동생인 이가현 씨와 결혼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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