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진행된 '매미' 우화…수년 땅속 기다림과 짧은 삶 향한 치열한 환호성
아파트 불빛 속 한밤중 진행된 매미의 우화 [촬영 유형재]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열대야로 쉽게 잠을 이루기 힘든 여름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강원 강릉시 도심의 한 아파트 주변 공원에서 경이로운 생명의 탈바꿈이 펼쳐졌다.
밤 9시 에어컨 바람을 뒤로하고 조용히 밤 산책을 나선 주민들의 발걸음 닿는 공원의 나무 기둥과 풀숲 곳곳에서 눈부신 생명 탄생의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 사물조차 잘 구분되지 않는 시간.
땅속에서 수년 동안 길고 어두운 시간을 견디고 올라온 매미 유충(애벌레) 한 마리가 산책로 안전 목책을 향해 천천히 기어오른다.
한밤중 매미의 우화 과정 [촬영 유형재]
유충이 자리를 잡은 목책 위에는 이미 탈피를 마친 빈 껍질만 남아서 마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묵묵히 지켜보는 듯 자리 잡고 있다.
우화는 매미의 지상에서 첫걸음이자 생애 가장 위험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이다.
잠시 후 애벌레의 등 껍질이 갈라지며 머리와 가슴이 모습을 드러낸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뒤로 젖히며 딱딱한 껍질을 벗어던지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탈피 직후 겹쳐 있던 날개는 연초록빛, 마치 영롱한 에메랄드처럼 투명하게 천천히 펼쳐진다.
매미 우화 뒤로 보이는 아파트 불빛 [촬영 유형재]
매미 우화 뒤로 보이는 아파트 불빛 [촬영 유형재]
날개는 습하고 무더운 밤공기를 맞으며 빠르게 말라가고, 몸 색은 점차 어둡고 단단하게 변하며 비상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생명 탄생의 드라마는 1시간 안팎 이어졌다.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공원 구석구석에서는 또 다른 생명 드라마가 조용히 완성되고 있었다.
도심을 밝히는 가로등과 아파트 불빛 같은 빛 공해, 팍팍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도 매미들은 수년간 어두운 땅속에서 이어온 기다림을 끝내고 위대한 생명력을 증명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가로등 불빛 아래 매미 우화 [촬영 유형재]
다시 찾은 공원 산책로 목책에는 매미가 벗어놓은 빈 껍질만 남아 있을 뿐, 밤새 생명 드라마를 펼쳤던 주인공들은 이미 하늘로 날아오른 뒤였다.
수양버들 나무에서는 유난히 더 크게 매미가 울어대는 듯 들렸고, 목책에서는 자기 몸이 빠져나온 듯한 빈 껍질 아래서 또 다른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다.
수년간 땅속 어둠을 견디고 나와 단 며칠간의 짧은 삶을 불태우는 매미들.
그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찬 아파트는 어제보다 훨씬 시끄러워졌지만, 그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땅속 긴 기다림을 이겨내고 세상에 목소리를 낸 가장 치열하고 경이로운 생명의 환호성이다.
생명의 드라마 주인공인 성충이 된 매미는 지상에서 약 2∼4주 동안만 살며 짝짓기를 마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매미가 우화하고 남은 빈 껍질과 매미 [촬영 유형재]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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