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선비가 튕긴 거문고, 다시 소리를 얻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0 00:48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 특별전 ‘고산의 현, 마음을 조율하다’

고산유금·고문헌에서 스마트폰까지…‘소리’를 따라 만나는 윤선도의 또 다른 얼굴


시조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1587~1671)를 우리는 주로 시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삶 가까이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자연을 노래했던 시어의 뒤편에는 거문고의 현이 울렸고, 음악은 풍류를 넘어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윤선도 서거 355주년을 맞아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고산의 현(絃), 마음을 조율하다’는 바로 이 ‘음악인 윤선도’와 녹우당에 이어져 온 소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전시다.


지난달 24일 문을 연 전시는 개막 2주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고산유적지 내 녹우당 충헌각에서 계속된다. 해남군과 녹우당문화예술재단, 국립한국문학관이 함께 마련했다.


이번 특별전의 흥미로운 지점은 윤선도의 문학을 시와 문자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녹우당에 전해 내려온 악기와 악보, 고문헌을 하나의 ‘소리의 계보’로 엮어 조선 선비들에게 음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해남윤씨 종가에 전해지는 거문고인 ‘고산유금’을 비롯해 아양 관련 유물, ‘고록’, ‘낭옹신보’, ‘아속가사’, ‘어부사시사’ 등 녹우당이 간직해 온 음악·문학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악기와 문헌, 악보와 시가가 서로 다른 유물처럼 보이지만 전시장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학문과 풍류, 자연과 자기 수양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연결돼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표준 영정.

전시는 네 개의 흐름으로 짜였다. ‘선비에게 악(樂)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음악을 단순한 연주나 오락이 아니라 마음과 삶의 태도를 다스리는 방편으로 받아들였던 음악관을 살핀다.


‘녹우당의 기록, 고록’에서는 종가에 전해진 음악 관련 고문헌을 통해 칠현금의 구조와 제작 방식 등을 보여준다. 기록 속에 머물던 옛 악기가 어떤 모습과 원리로 소리를 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600년의 나무, 시간의 증거’에서는 고산유금과 아양 관련 유물을 통해 한 집안에서 여러 세대를 건너온 음악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오래된 악기는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한 가문이 무엇을 듣고, 기록하고, 기억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소리의 시간표’가 된다.


마지막 ‘다시 울리는 현(絃)’에서는 남아 있는 유물 조각과 문헌 기록을 토대로 악기를 복원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사라진 악기를 외형적으로 되살리는 데 머물지 않고, 한때 그 악기를 통해 울렸을 소리와 당대 사람들의 감각까지 되짚어 보려는 시도다.


특히 이번 전시는 ‘보는 유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악기의 역사와 명문을 설명하는 영상과 함께 직접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청음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전통악기의 울림에서 LP와 CD, 카세트테이프를 거쳐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달라진 음악 감상 방식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시 제목의 ‘조율’은 단순히 거문고의 줄을 맞추는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현을 조율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삶의 질서를 찾았던 윤선도의 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조선 시대 문인 윤선도가 지은 연시조  ‘오우가(五友歌)’가 수록된 고문헌.

특히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윤선도의 시가를 그의 음악적 세계와 함께 바라보면 익숙했던 작품도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시조의 반복과 호흡,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 리듬은 종이 위의 문자이면서 동시에 소리를 전제로 한 언어였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해 선보인 ‘600년을 이어온 종가의 상’에 이어 녹우당에 축적된 생활문화와 정신세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연속 기획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 인물의 유품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종가에 남은 사물과 기록을 통해 당대인의 생활과 감각까지 복원하려는 것이다.


600년을 건너온 나무 악기는 이제 예전과 같은 소리를 들려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악기의 몸에 남은 흔적과 기록 속 음률, 윤선도가 남긴 시는 여전히 그 시대의 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고산의 현, 마음을 조율하다’는 들리지 않는 옛 소리를 오늘의 귀로 다시 듣게 하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해남 고산유적지 내 녹우당 충헌각에서 이어진다.


충헌각은 녹우당 고택 바로 옆에 있는 한옥 건물이다. 과거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이번 ‘고산의 현(絃), 마음을 조율하다’ 특별전이 바로 이 충헌각 내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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