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한 달 보름만에 2쇄 찍은 김연화 안젤라 시인의 첫 시집『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
“문디 가시나야 개안아여 / 하밍서 안심시키 주밍서 / 두툼한 손등으로 얼굴 한번 쓰윽 문질러 주고 / 등때기 한번 두딜러 주고 / 약손으로 배 한번 주물러 주마 다 나아여 고마.”
경북 김천 출신 김연화 안젤라 시인이 첫 시집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걷는사람 시인선 137)를 펴냈다. 출간 한 달 보름 만에 2쇄에 들어가며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표준어로는 온전히 옮기기 어려운 고향의 말과 유년의 기억,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김천 사투리 특유의 리듬으로 되살린 시집이다.
시집 제목부터 낯설고 정겹다. ‘개박골’, ‘앙등할 낀데’ 같은 토박이말 속에는 김천의 햇살과 바람, 포도밭의 냄새와 사람들의 말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시인에게 사투리는 단순한 지역어가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표정이자 몸짓이며, 잊힌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통로다.
“여나 나아 줘서 고마배여”, “디지든가 말든가 냅뚜부리”, “니야까”, “이뿌다” 같은 말들은 시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다듬어진 표준어가 밀어낸 말들이지만, 시인은 바로 그 말들 속에서 사람의 체온을 찾아낸다. 웃음과 울음, 핀잔과 위로가 뒤섞인 사투리는 그 자체로 리듬이 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된다.
시집의 문을 여는 「보리까끄래기 도리깨질한 날」에는 시인의 출생에 얽힌 어머니의 노동이 등장한다.
“우리 어머니 보리타작하다가 날 낳으셨다네 / 음력 유월, 오후 세 시와 땡볕 사이…”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노동의 시간과 어머니의 생명력이 짧고 강렬한 언어 속에 포개진다. 개인의 탄생은 한 여성의 생애와 연결되고, 다시 농촌 공동체의 기억으로 넓어진다.
시집은 모두 4부로 구성됐다. 「버버리가 통시에 빠진 날」, 「부지깽이 씨래기 끼리는 날」, 「그 여자 산내이 오매」, 「봉명에너지」 등 연작시를 중심으로 유년과 가족, 마을의 풍속과 노동, 가난과 죽음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특히 표제시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에서는 포도밭을 둘러싼 유년의 풍경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언니야 개박골 포도밭 새순 피었데이, 우리 꽃 따러 가재이 / 인자 노란 꽃 녹색 꽃들이 앙등할 낀데”
포도꽃이 ‘앙등하는’ 순간은 단순히 식물이 피어나는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한꺼번에 돋아나는 순간이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이 현재의 언어 속에서 되살아나는 장면이다.
그 기억이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산으로 쫓겨난 여성의 비극, 가난과 죽음이 일상 가까이에 놓여 있던 시절의 가족사도 시집 곳곳에 배어 있다. 시인은 비극을 과장하거나 슬픔을 앞세우기보다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을 법한 말과 몸짓을 통해 그 시대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래서 웃음 뒤에 눈물이 있고, 거친 농담과 해학 뒤에는 질긴 생의 힘이 남는다.
시인의 시에서 김천 사투리는 ‘고향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시를 움직이는 중심축이다. 사라져가는 입말을 복원함으로써 그 말을 쓰던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불러낸다. 한때 흔했으나 이제는 듣기 어려워진 말 한마디가 어머니와 언니, 이웃과 골목, 밭과 장터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문학평론가 김효숙은 해설에서 김연화 안젤라의 시 언어에 “‘새그러븐 사과’ 맛이 난다”고 평하며, 익명의 죽음까지 돌보는 공동체의 윤리와 여성의 입말로 되살린 인간성의 복원을 시집의 중요한 의미로 짚었다.
추천사를 쓴 이승하 시인도 “김천이란 작은 도시의 사연과 자연, 풍경과 풍속,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과 꿈, 인심과 산물, 사투리와 표정이 포도, 자두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는 이 시집은 김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에 새겨질 것”이라고 평했다.
김연화 안젤라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월간 《현대시》 편집부에서 근무했으며 2018년《시와 표현》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화성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경기도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 상주작가로 활동하면서 지역 독자들과 문학으로 만나고 있다.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는 한 시인의 개인사를 기록한 첫 시집이면서 동시에 한 지역과 한 세대의 언어를 보존한 생활사에 가깝다. 특히 첫 시집이 출간 한 달 보름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지역의 입말과 생활사를 복원한 시가 독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공감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과 일상은 늘 함께였음을.”
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전 들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투, 골목에서 불리던 이름, 이제는 쓰지 않는 단어 하나쯤이 불현듯 되살아난다. 그렇게 김연화 안젤라의 포도꽃은 개박골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도 다시 ‘앙등’하기 시작한다.
김연화 안젤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