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문학》 첫사랑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8-13 23:56


첫사랑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함께 묻어 달라고 했던 옷은 ‘분홍 스웨터’다. ‘소녀’가 ‘소년’과 만나 개울가, 논길, 들을 뛰놀 때 입던 그 옷. 그 옷에는 ‘검붉은 진흙물’ 얼룩이 있다. 소년이 소녀를 업고 도랑을 건널 때 소년으로부터 물든 것이다. 개울물처럼 맑고 깨끗한 첫사랑 이야기다.


첫사랑은 영혼을 온통 사로잡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 것이 첫사랑이었구나’라고 알아챌 만큼 미숙한 사랑이다. 그래서 열병처럼 왔다가 꿈처럼 흔적없이 사라지고는 한다.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도 첫사랑은 애잔한 음악의 끝자락 속으로 사라져 간다. 우산가게집 딸 주느비에는 기라는 청년을 사랑하지만, 그가 징집된 뒤 소식이 끊기자 보석상과 결혼을 한다. 3년 뒤 크리스마스 이브, 기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한 여자 손님이 온다. 주느비에다. 다시 만난 두 사람. 가슴에는 절절한 그리움이 사무쳐온다. 그러나 이미 다른 이의 남편이고 아내이다. 서로 “행복해?”라고 묻고는 곧 헤어진다.



원로 영문학자 피천득 선생도 국어교과서에 실려 더욱 유명해진 ‘인연’이란 수필에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예쁘고 웃는 얼굴의 첫사랑 ‘아사코’가 단지 연두색 우산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는 아사코가 초등학생, 여대생, 30대 기혼자였을 때 세번 만났다. 세번째 만남 때는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그를 보고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그 아사코를 KBS TV가 찾아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만나지 않았다. 아사코라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름이 현실에 의해 깨지지 않은 채, 그 글을 읽은 이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됐다. 사실 첫사랑이 ‘비현실’인 바에야 가슴 한편에 마음의 보석으로 묻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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