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농사 하는 안동 청년 손창현 대표, 격투기로 이주민과 '원 팀' 되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청년 6명과 'AD패밀리' 결성…학교폭력과도 맞선다
"일하며 운동하는 게 재밌어요"…우즈벡 청년들이 안동서 찾은 '가족'
손창현 대표와 'AD패밀리' 멤버 (안동=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최근 경북 안동 태그클럽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손창현 대표와 'AD패밀리' 멤버들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버불·손 대표·모민·백기·무로드·알리 씨. seva@yna.co.kr
(안동=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국에 일하러 와서 많이 외로우시죠. 언제든지 킹덤 안동으로 오세요. 든든한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종합격투기(MMA) 체육관 '킹덤 안동'을 운영한 손창현(42) '태그클럽'(TAGCLUB) 대표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와 유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 대표는 체육관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 청년 6명과 3년 가까이 함께 운동하며 'AD패밀리'를 결성했다. 인구 감소 지역 안동에서 격투기를 매개로 이주민과 지역민이 공감과 연대를 쌓아 가족이 되고 있다. AD는 이들이 정착한 안동(Andong)의 약자다.
손 대표는 격투기 아마추어 선수 출신으로, 서울에서 아마추어 대회를 주관하며 선수들의 프로 진출을 돕고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했다.
이후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와 가업인 사과 농사와 체육관 운영을 병행했다. 현재는 체육관 운영을 후배에게 맡겼지만, 여전히 체육관에 나와 AD패밀리 멤버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24년 체육관 운영 초기다. 손 대표는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며 일하던 친구들이었다"며 그들의 어려운 생활 환경을 잘 알기 때문에 체육관비를 받지 않았다. 처음 2명으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지금은 6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손창현 대표 (안동=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최근 경북 안동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손창현 대표. seva@yna.co.kr
이들 중 일부는 세미프로 무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손 대표는 "세미프로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2년 정도는 정말 꾸준히 훈련해야 하고, 시합도 10번 이상 나가야 한다"며 "준프로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동을 통한 정착 지원을 앞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다. "농촌에는 여러 나라 친구들이 온다. 운동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 체육관에 와서 함께 땀을 흘렸으면 좋겠다"며 "운동 특성상 서로 몸을 맞대는 일이 많다 보니 다른 운동보다 훨씬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인구감소 지역인 안동을 찾은 이주민들이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역을 알리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손 대표는 격투기 유튜브 채널 '태그클럽'도 운영한다. 기존의 정형화된 경기 방식에서 벗어나 2대2 태그 방식 등 대중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규칙의 콘텐츠를 선보인다.
그는 "링 위에서는 결국 1대1로 경기하지만, 선수를 돌보는 코치진, 작전을 짜는 감독, 함께 운동하는 팀원이 있는 만큼 팀 간의 싸움"이라고 기획 배경을 밝혔다.
채널 평균 조회 수는 4만~5만 회, 최고 조회 수는 17만~18만 회에 달한다. 촬영은 모두 안동 곳곳에서 이뤄진다.
손 대표는 "한옥스테이 등 안동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하는데, 대관 비용은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했다.
알리와 훈련하는 손창현(오른쪽) 대표 (안동=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알리와 격투기 훈련하는 손창현(오른쪽) 대표. seva@yna.co.kr
손 대표는 격투기를 통해 지역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최근 학교 폭력 방지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체육관 학부모로부터 딸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가해 학생보다 한두 살 많은 지역 선배에게 중재를 부탁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
이후 중학교 3학년인 자신의 딸도 낯선 남학생들과 갈등을 겪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20명이 넘는 이들로부터 집단 공격을 당해 같은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가 있다.
그는 두 차례 체험을 통해 "학교 폭력은 어른이 개입하는 것보다 또래에 가까운 선배들이 나서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활동하는 20세 안팎의 청년 격투기인들이 모여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의 청년 격투기인 14명가량이 뜻을 모았으며, 9월 초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콘텐츠 촬영을 계획하고 있다.
체육관에서 만난 AD패밀리 3명도 소감을 전했다. 한국 이름 '백기'로 불리는 딜쇼드벡 씨는 "이 체육관에서 3년 가까이 운동했다"며 "대표님과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같이 일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니까 좋다"며 "계속 여기서 열심히 운동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손창현 대표가 운영하는 격투기 유튜브 채널 '태그클럽' [유튜브 화면 캡처]
한국 이름 '모민'으로 불리는 모민존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운동을 했고 한국에서 킥복싱 시합 경험도 있다"며 "이제 안동이 두 번째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손 대표에 대해 "조건이 다른 친구들과 스파링하는 법을 알려줘 좋다"며 "이렇게 잘 가르쳐주는 운동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스파링과 시합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온 지 2년째인 무로드영 씨는 손 대표와의 첫 만남을 "착한 사람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국에 와서도 같이 운동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다"고 전했다.
손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좋은 기억, 재밌었던 추억을 많이 가지게 하고 싶다"며 "안동 근처에서 일한다면 언제든 킹덤 안동에 와서 함께 운동하고, 사과 과수원에서 고기도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타국에 홀로 일하러 온다는 것이 쉬운 도전이 아니다"라며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지 말고 따뜻하게 맞이해 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