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㊸] 졸업하지 못한 스물아홉 살이 다시 졸업한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31 01:07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 달을 더 끌다 끝났다

검은 학위복 입은 나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의 첫걸음 


채충석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 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 시간 거리의 직행 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 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닌다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므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 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 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

성이 최 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1985년 겨울의 첫걸음. 홀로 교문을 나서는 필자.

채충석 시인의 「겨울의 첫걸음」은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대학을 시인은 ‘5학년’까지 다닌다. 졸업을 앞두고 1학점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졸업해 떠나고 혼자 남아 두 시간 거리의 직행버스를 타고 수요일 한 시간의 강의를 들으러 학교에 간다. 계절이 바뀌고 마침내 마지막 학기가 끝난다.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와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오래전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역시 제때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졸업식은 했다. 꽃다발도 받았고 사진도 찍었다. 지금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머리를 귀까지 기르고 얼굴의 절반만 한 커다란 안경을 쓴 청년 하나가 졸업식 인파 속에 서 있다. 꽃다발을 안고 제법 졸업생다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학사모는 쓰지 못했다.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졸업 이수학점에서 딱 1학점이 모자랐다. 1학년 때 이미 이수해 놓은 교양과목 하나를 나중에 수강신청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수강신청만 하면 학점은 그대로 인정되는 상황이어서 다시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1학점만 달랑 신청하고 등록금 3만 원을 내고 한 학기를 더 다녔다. ‘다녔다’고 하지만 학교에 갈 일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고 넘길 일이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졸업장이 없으니 제대로 취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자 식구들의 눈총도 점점 따갑게 느껴졌다. 취직하지 못한 졸업생들 틈에 섞여 대학도서관에서 취업 시험 준비라도 했더라면 그 반년을 조금 덜 허망하게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남들이 제때 하는 졸업을 못했다는 사실이 그저 쪽팔렸다. 대학 교정에는 발길조차 들여놓기 싫었다. 젊을 때는 남보다 반 발짝 늦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낙오처럼 느껴진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서 반년쯤 늦어진 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스물아홉 살의 반년은 길었다. 친구들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나 혼자 플랫폼에 남겨진 것 같았다. 그래서 채충석 시인의 ‘5학년’과 나의 ‘5학년’은 묘하게 포개진다.


시인은 졸업장을 받으러 겨울로 걸어갔고, 나는 졸업장 없는 졸업사진 한 장을 남겨두고 서른 살 고개를 넘었다.


그 뒤로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직장에 다녔고 가족을 이루고 시를 썼다. 학교보다 더 복잡한 세상에서 수없이 시험을 치렀다. 점수를 매겨주는 사람도 없고 졸업장을 주는 사람도 없는 공부였다. 그러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국립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학위수여식장에서 컨설팅학석사 학위를 받고 석사모 쓰고 기념 촬영한 필자.

지난 8월 21일, 국립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학위수여식장에서 석사모를 썼다. 거울 속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검은 학위복 입은 지금의 나만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무 살 청년도, 서른 살 직장인도 지나온 세월까지 함께 석사모를 쓴 것 같았다.


이번에는 진짜 졸업장이 있었다. 학위증에는 내 이름 석 자와 함께 ‘컨설팅학석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종이 한 장은 가벼웠지만 그것을 받아 들기까지의 시간은 가볍지 않았다. 여러 번 멈췄고 여러 번 딴 길로 샜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도 조금 거창하다. 다만 아주 놓아버리지는 않았을 뿐이다.


졸업식 날에는 꽃다발도 받고 축하도 받았다. 멀리서 화환까지 보내온 고마운 분도 있었다. 젊은 외국인 졸업생들과 나란히 사진도 찍었다. 태어난 나라와 나이도, 살아온 길도 서로 달랐지만 그날만큼은 모두 같은 이름이었다.


어제는 더 뜻밖의 졸업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형에게서 아침에 전화가 왔다.


“엄마 집으로 와라.”


무슨 일인가 하고 갔더니 형제들이 석사학위 취득을 축하한다며 축하금을 건넸다. 손으로 쓴 카드도 있었다.


“영예로운 석사학위 취득을 축하 축하 합니다.”


나이 들어 형에게 이런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어머님과 함께 석사학위 취득을 기뻐하는 필자.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학위증을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학위증을 두 손으로 들고 활짝 웃었다. 아들이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석사학위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보다 아들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사실이 좋은 듯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내가 그 긴 시간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졸업식은 학교에서 끝났지만 축하는 계속됐다. 선물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고 커피 쿠폰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축하 문자가 쌓였다. 수백 통에 이르는 축하 메시지를 받으며 오히려 조금 얼떨떨해졌다. 스물아홉 살의 졸업식에서는 학사모도 졸업장도 없었는데, 이번 졸업식에는 너무 많은 것이 도착했다.


꽃이 왔다. 선물이 왔다. 축하금도 왔다. 일주일 내내 축하 인사와 축하 메시지를 받느라 정신 없었다. 오래전 받지 못했던 무엇이 뒤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놓아본다. 한 장에는 머리가 길고 커다란 안경을 쓴 스물아홉 살의 내가 꽃다발을 들고 있다. 졸업식에 참석했지만 졸업장은 없었던 청년이다. 다른 사진에는 석사모를 쓴 지금의 내가 학위증을 들고 웃고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거의 마흔 해의 시간이 놓여 있다.


늦게 피는 꽃이 있듯 늦게 받는 코스모스 졸업장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출발과 도착으로 설명한다. 몇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몇 살에 취직하고, 몇 살에 결혼하고, 몇 살에 은퇴한다고 말한다. 마치 정해진 시간표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살아보니 시간표대로 오는 것은 별로 없었다. 늦게 오는 것도 있고, 돌아서 오는 것도 있다. 한 번 놓쳤다가 수십 년 뒤 다시 찾아오는 것도 있다.


채충석 시인의 「겨울의 첫걸음」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졸업’보다 ‘첫걸음’이라는 말이다. 졸업은 끝인데 시인은 그것을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제야 그 말이 조금 이해된다.


며칠 뒤 나는 태국 치앙마이로 떠난다.

졸업여행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스물아홉 살에는 졸업장이 없어서 가지 못했던 여행을 거의 마흔 해가 지나 떠나는 셈이다. 


너무 늦은 졸업여행이라고 누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늦으면 어떤가. 스물아홉 살에 끝내지 못한 졸업식도 있었고, 예순여덟 살에 다시 쓰는 석사모도 있다. 늦게 피는 꽃이 있듯 늦게 받는 졸업장도 있고, 늦게 떠나는 졸업여행도 있는 것이다.


채충석 시인은 졸업장을 받으러 겨울로 걸어갔다. 나는 이제 학위증을 서랍에 넣고 여름의 끝에서 여행 가방을 꺼낸다.


졸업은 끝났지만, 또 첫걸음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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