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철마(鐵馬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8-29 23:48


철마(鐵馬)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기차 또는 기차역은 가슴아픈 이별과 애타는 기다림의 상징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 기차가 지금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증기기관차라면 독자와 관객들은 더욱 애잔한 정취를 느낄 법도 하다.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에서 이미 결혼한 ‘나’는 첫사랑인 ‘그 남자’와 우연히 퇴근길 전차 안에서 만난다. 생활에 찌든 ‘나’와 ‘나’를 잊지 못하고 있던 ‘그 남자’의 밀회가 잦아지고 마침내 두 사람은 기차역에서 만나 하룻밤의 밀월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 남자’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그 기차역은 두번째 이별의 장소가 된다.


소피아 로렌의 들꽃과도 같은 야성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영화 ‘해바라기’에서도 기차역은 이별의 회한과 고통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귀환병들을 태운 기차가 도착했지만 기다리던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지오반니(소피아 로렌)는 직접 남편을 찾으러 러시아로 향한다. 그러나 남편은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해 딸까지 낳고 살고 있었다. 피눈물을 뿌리며 지오반니는 기차에 올랐고, 차창 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이 보일 뿐이었다. 이 영화는 원래 1970년에 제작됐으나 해바라기가 구 소련의 상징이라는 이유 등으로 83년에야 개봉됐다. 당시는 KBS의 이산가족상봉으로 전국이 ‘통곡의 바다’가 됐을 때여서 이 영화의 국내 상영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1899년 경의선 개통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증기기관차는 일제 강점기와 분단, 개발독재와 실향 등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 한층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분단으로 인해 끊어진 경의선의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 장단역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과 함께 길게 누워 있는 녹슨 증기기관차이다. 76년의 세월 동안 부식되고 훼손된 이 기관차가 영구보존될 수 있도록 임진각에 있는 보존처리장으로 옮겨진다고 한다. 통일과 함께 경의선은 물론 경원선까지 연결되어 서울에서 만주와 연해주를 거쳐 유럽까지 곧바로 갈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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