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앙아를 잇다]⑬ 떠밀린 이주에서 선택한 터전으로…유럽에 뿌리내린 고려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9-04 09:26

강제이주 후 세대 거쳐 재이동…교육·직업·가족 찾아 '제3국' 정착


유럽 각지서 의사·IT 전문가·예술가 등으로 활약


유럽 곳곳에서 모인 고려인·사할린동포유럽 곳곳에서 모인 고려인·사할린동포 (암스테르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제81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식당 '더 밥'에서 연합뉴스가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 등에서 온 참석자들은 가족의 이주사와 한국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2026.9.4 raphael@yna.co.kr


(암스테르담·베를린·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8월 1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한식당.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이었지만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식을 나누며 러시아어와 영어가 오갔고, 대화는 어느새 한국과 자신의 뿌리, 조부모 세대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사는 곳도 살아온 길도 달랐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에서 온 이들의 직업도 의사와 IT 전문가, 작가 등 다양했다.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접점이 없었지만, 가족의 이주사 등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이뤘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소련 해체 후 난민 인정 과정을 거쳐 벨기에에 정착한 작가 김 니나(77)는 현지에서 고려인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이력이 있다. 독일 노르트호른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 한 발레리아(35)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함께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유럽 고려인들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유럽 고려인들 (암스테르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벨기에에 정착한 타지키스탄 출신 텐 아나스타시야 부부, 독일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는 한 발레리아, 네덜란드에서 IT 분야에 종사하는 김 안드레이-세르게이 가족, 벨기에에 정착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작가 김 니나 부부. 이들은 교육과 직업, 가족 등 서로 다른 경로로 유럽에 정착했다. 2026.9.4 raphael@yna.co.kr


이날 간담회는 연합뉴스가 '한·중앙아를 잇다' 기획을 위해 6개월간 진행한 취재 과정에서 마련됐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떠나 유럽에 정착한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을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직접 만나고, 영국·프랑스 등 유럽 각지 동포와도 접촉했다.


그동안 고려인의 이동사는 주로 1937년 러시아 극동에서 중앙아로 향한 강제이주와 이후 한국으로의 귀환을 중심으로 조명됐다. 그러나 취재진이 만난 후손들의 가족사를 따라가면 다시 서쪽으로 뻗어가는 또 하나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 강제이주 세대 지나 다시 서쪽으로…이젠 '선택한 이동'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김 안드레이-세르게이(40)의 가족사는 거듭된 이동을 보여준다. 증조부 세대는 연해주에서 중앙아로 이동했고, 부모 세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로 재이주했다. 국제 IT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딸의 성장 환경을 고민해 네덜란드 헤이르휘호바르트에 정착했다.


1990년대에는 소련 해체 뒤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 서유럽으로 향한 고려인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구소련 독일계 주민의 귀환 과정에서 독일계 배우자나 가족을 둔 고려인이 함께 이동하는 통로도 생겼다.


최근 세대에서는 교육과 전문직, 가족의 미래라는 개인적 선택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예술가 김 다리아(29)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7년 전 베를린에 왔다. 베를린예술대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가족의 아픔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강제이주 당시 1살이던 할아버지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 제목도 '1937'이다.


할아버지의 강제이주 기억을 작품으로 선보인 고려인 예술가할아버지의 강제이주 기억을 작품으로 선보인 고려인 예술가 (베를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예술가 김 다리아가 지난 8월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예술대 연구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강제이주 당시 1살이던 할아버지의 역사를 소재로 '1937'이라는 비디오 아트 작품을 제작했다. 2026.9.4 raphael@yna.co.kr


독립운동가 권재학(1879∼1938)의 후손인 사할린동포 권 율리아(29)는 19살에 독일로 왔다. 대학 예비 과정을 거쳐 의대에 진학했고 현재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내과 전공의로 일한다. 가족은 러시아, 네덜란드, 미국 등에 흩어져 있다.


함부르크 고려인 김 세르게이(40)와 아내 엘레나(36)는 한국 이주도 검토했지만, 자녀 교육과 직업 기회, 가족의 미래 등을 고려해 독일을 택했다. 이들에게 독일행은 혈통을 따라가는 이동보다 삶의 조건을 비교한 현실적인 선택에 가까웠다.


어렵게 만난 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출신 고려인의 이동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타지키스탄의 텐 아나스타시야(37)는 2015년 유럽으로 건너가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했다. 한국 유학 경험이 유럽행의 도약대가 됐다고 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장한 김 빅토리아(52)는 200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라이프스발트에서 독일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현재 연구기관과 환경재단에서 일한다. 유학 이후의 삶을 '챕터 2'라고 표현했다.


독일에 저마다 삶의 터전 잡은 고려인·사할린동포독일에 저마다 삶의 터전 잡은 고려인·사할린동포 (함부르크·브라운슈바이크·베를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독일에서 만난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 왼쪽부터 함부르크에 정착한 김 세르게이 가족,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내과 전공의로 일하는 사할린동포 후손 권 율리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장해 독일에서 연구기관·환경재단에 종사하는 김 빅토리아. 이들은 가족의 미래와 교육, 유학 등 서로 다른 계기로 독일을 삶의 터전으로 택했다. 2026.9.4 raphael@yna.co.kr


◇ 교육·직업·결혼 따라 유럽행…하나의 '이주 공식' 없어


취재 범위를 영국·프랑스·스위스·덴마크 등 유럽 각지로 넓히자 이동 경로는 더욱 다양해졌다.


네덜란드 호른에 사는 텐 바제나(43)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살다가 결혼을 계기로 2012년 독일로 이동했다. 이후 네덜란드로 옮겨 금융회사에서 IT 분야 시니어 스크럼마스터로 일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첸 인나(51)는 약 20년 전 덴마크로 건너와 코펜하겐에서 의사로 일하며 췌장암센터를 이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문직 지위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무급으로 일하며 경력을 다시 쌓았다고 했다.


영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텐 빅토리아(51)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이스라엘 등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뒤 영국에 정착했다. 법률 업무와 한국문화 연구를 병행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특정 국가 하나보다 '다문화적'이라고 표현했다.


카자흐스탄 출신 셰프 콘스탄틴 코가이(24)는 요리사의 꿈을 좇아 18세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르 코르동 블루'에서 공부한 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 안나(45)는 모스크바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미국과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다 결혼 후 스위스에 정착했다. 현재 취리히에서 연주와 음악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각국 전문 분야서 활동하는 고려인들유럽 각국 전문 분야서 활동하는 고려인들 (서울=연합뉴스) 연합뉴스가 접촉한 유럽 각국의 고려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위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김 안나,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텐 빅토리아, 덴마크에서 의사로 일하는 첸 인나, 프랑스에서 셰프로 활동하는 콘스탄틴 코가이. 이들은 서로 다른 이동 경로를 거쳐 유럽 각국에서 전문 분야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2026.9.4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안 예브게니아(33)는 카자흐스탄에서 성장한 뒤 교육·연구 기회를 찾아 독일로 왔다.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연구하는 그는 독일행이 정체성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더 넓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며, 중앙아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노동 이주와 유럽으로 향하는 교육·전문직 이동에 주목했다.


이처럼 이들의 이동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다만 조부모 세대가 국가에 의해 목적지를 결정당했다면 상당수 후손에게 유럽행은 공부하고 일할 곳, 가족을 꾸리고 살아갈 사회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독일에서 고려인의 이동을 연구하는 고려인 박사독일에서 고려인의 이동을 연구하는 고려인 박사 (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카자흐스탄에서 성장한 고려인 디아스포라 연구자 안 예브게니아(왼쪽에서 첫 번째)가 지난 8월 2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언니 가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그는 중앙아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노동 이주와 유럽으로 향하는 교육·전문직 이동 등 고려인의 다양한 이동 경로를 연구하고 있다. 2026.9.4 raphael@yna.co.kr


◇ '이민사회' 독일서도 통계 밖…구소련 출신에 묻힌 고려인


독일은 이 같은 이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독일에는 이민 배경을 가진 인구가 약 2천580만명에 달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 뿌리를 둔 인구도 각각 100만명을 넘지만 정확한 고려인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독일 연방 내무부 관계자도 독일의 통계·조사와 통합 모니터링이 시민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고려인을 별도 집단으로 집계하는 통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적이나 출생국 중심 통계에서는 고려인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규모 집거지나 조직화한 공동체 없이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어 기존 통계와 동포사회에서도 쉽게 포착되지 않았다.


요나 록 독일이주통합연구센터(DeZIM) 박사는 "구소련 출신이나 러시아어권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이들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부터 독일계·유대계 이주민과 고려인까지 이주 역사와 법적 지위, 집단 기억이 서로 다르다"고 짚었다.


임은실 파리시테대 교수와 이애리아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소련 붕괴 후 독일이 구소련 독일계 주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독일계 배우자와 가족을 둔 고려인도 함께 이동하는 경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 세르게이(52)는 키르기스스탄과 러시아를 거쳐 독일계 귀환 이주민 자격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한 아내를 따라 2018년 독일로 왔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쌓은 역도 분야 경력을 인정받기 어려워 철도 관련 업무와 역도 코치 일을 병행하고 있다.


유럽이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지만, 입국이 곧 이전 경력과 사회적 지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지 산업계에서는 고려인 네트워크 자체보다 개별 인재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중앙아 사정과 러시아어권 문화, 유럽의 제도·비즈니스 환경을 이해하면서 언어와 직무 전문성을 갖춘 인재라면 한국 기업의 현지 사업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고려인 이주 설명하는 독일 이민 전문가고려인 이주 설명하는 독일 이민 전문가 (베를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요나 록 독일이주통합연구센터(DeZIM) 박사가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앙역 앞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록 박사는 구소련 출신이나 러시아어권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이주민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각 집단의 이주 역사와 법적 지위, 집단 기억이 서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2026.9.4 raphael@yna.co.kr


◇ 멀어지자 더 선명해진 뿌리…음식·예술로 정체성 확인


취재진이 만난 상당수의 고려인은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오히려 더 의식하게 됐다고 했다.


독일의 슈뢰틀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 음식과 고려인 문화가 일상이었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환경이 사라져 다층적인 정체성을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첫돌에는 한국 전통 요소를 넣었다.


독일 아헨에서 제약·임상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러시아 출신 고려인 턘 파벨(49)은 한국 역사·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끊어진 가족의 뿌리를 잇기 위해 자신의 가계를 한국 족보에 다시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사는 텐 바제나(43)에게는 '아리랑'이 연결고리다. 할아버지가 결혼식과 가족 모임에서 부르던 아리랑을 기억하는 그는 최근 세계 무대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을 접하며 가족의 기억과 현대 한국이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파리의 고려인 셰프 코가이에게는 음식이 정체성을 찾는 매개가 됐다. 카자흐스탄에서 자연스럽게 접한 고려인 음식이 현대 한국 음식과도, 중앙아 음식과도 다른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프랑스에 온 뒤 깨달았다. 그는 이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기억을 잃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적응'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반대로 이동은 상실도 가져왔다. 영국 라이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우즈베키스탄 작가 김 마리나(56)는 어릴 때 한국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몇 단어만 기억한다. 과거 먼 친척과 기념일마다 만났지만, 자녀 세대에서는 연결이 약해졌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키르기스스탄 출신 김 마리나(41)는 고려인 모임을 만들려 했지만,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베를린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 알렉산드르 엘리세예프(21)도 러시아어권 중앙아 친구들과 더 어울린다고 했다.


유럽에서 이어가는 고려인의 기억유럽에서 이어가는 고려인의 기억 (서울=연합뉴스) 영국 남부 라이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작가 김 마리나. 어린 시절 한국어를 배웠던 그는 유럽 정착과 세대교체를 거치면서 언어와 친족 간 연결이 점차 약해졌다고 말했다. 2026.9.4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6개월간 취재에서 확인한 것은 하나로 조직된 '유럽 고려인 공동체'라기보다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러 형태의 고려인이었다. 출신지는 중앙아와 러시아, 사할린 등으로 달랐고 유럽행 이유도 교육과 직업, 결혼, 전쟁, 미래 등 다양했다.


그러나 가족사를 몇 세대 거슬러 올라가면 상당수의 이동선은 1937년과 만났다. 조부모 세대에게 이동은 목적지를 선택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후손들은 공부하고 일하며 가족과 살아갈 곳을 스스로 정해 다시 국경을 넘는다.


강제로 그어진 고려인의 이동선은 이제 후손들이 선택한 삶의 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아와 러시아에서 다시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간 그 이동은 약 90년 사이 달라진 고려인의 삶을 보여준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암스테르담 저항박물관 찾은 고려인·사할린동포 후손들암스테르담 저항박물관 찾은 고려인·사할린동포 후손들 (암스테르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제81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연합뉴스가 마련한 간담회에 참석한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이 저항박물관을 방문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4 raphael@yna.co.kr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등록일자2025-07-05
오픈일자2025-07-05
발행일자2026-09-04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74-3.일심빌딩 302호 031-781-9811.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