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주연 넷플릭스 시리즈…공개 3일 만에 비영어 쇼 4위
괴담 문법에 노동 현실 풍자 담은 호러…"강력하고 사실적인 판타지"
넷플릭스 '꿀알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노동이라는 건 참 신기해. 할 때는 오만가지 복잡한 마음 들고 죽을 것 같고 그러다가도 그 돈을 손에 쥐는 순간 싹 까먹거든. 어때요? 달달하죠?"
지난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꿀알바'의 주인공 변혁준(이재욱 분)은 빚에 쫓기는 청년이다. 전세 사기를 당해 1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은 그는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지려다 "노동으로 빚 수렁에서 탈출하자"는 초고액 일당 아르바이트 전단을 발견하고 인력사무소 '거미인력'의 사장(이희준)을 찾는다.
사장은 최저시급의 50배를 지급하는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게임의 퀘스트(임무)를 깨듯 아르바이트에 성공하면 다음 일당은 최소 2배 높아진다. 단, 일터에서 벌어진 일은 절대 외부에 발설해선 안 된다.
'꿀알바'는 벼랑 끝에 선 청년 변혁준이 거액의 시급을 좇아 기이한 아르바이트 현장에 뛰어들며 겪는 생존기를 그린다.
4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서 집계한 넷플릭스 톱 10에 따르면 이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시청수(Views·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 500만을 기록하며 비영어 쇼 4위에 올랐다. 공개 직후부터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1위에 올랐고, 브라질, 이집트, 프랑스, 독일, 인도 등 51개국에서 톱 10에 들었다.
작품은 일의 강도에 비해 보수가 높고 근무 환경이 편하다는 '꿀알바'의 의미를 비틀어 익숙한 노동 현장을 공포의 무대로 바꾼다. 변혁준은 돈을 벌기 위해 편의점 야간 근무, 우유 배달, 건설 현장 일용직, 놀이공원 인형 탈 등의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일터엔 이해할 수 없는 규칙과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도사리고 있다.
넷플릭스 '꿀알바'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일반적인 공포물의 주인공이라면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빠르게 달아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변혁준은 번번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자신의 빚을 갚고, 여동생 변지윤(김민하)이 면접에 신고 갈 구두를 사고,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회사의 보상을 받지 못한 친구 곽병철(이석형)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끔찍한 일터로 향한다.
'꿀알바'는 죽을지도 모르는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며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묻는다. 다음 달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두려워 괴물의 등장이나 죽음의 무서움 앞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처지는 곧 공포의 본질이다. "귀신이 무섭냐, 거지 되는 게 무섭지"라는 극 중 변지윤의 대사는 작품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방식은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괴담의 문법이다. 노동의 모순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공포와 호러, 판타지와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로 풀어내며 접근을 돕는다.
'꿀알바'는 기묘한 규칙을 따르는 '나폴리탄 괴담'과 초자연적 존재를 격리·관리하는 가상 조직 'SCP 재단' 등 도시 괴담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이들 괴담은 위험의 실체를 밝히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따라야 할 규칙만 제시한다. 이는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때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불합리한 지시에 따라야 하는 노동자들 현실과도 닮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꿀알바'는 문제 인식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며 "공포에 기반한 판타지를 통해 노동 현실을 그 어떤 방식보다 강력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평했다.
넷플릭스 '꿀알바'에 출연한 배우 이재욱(왼쪽), 김민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꿀알바'의 공포는 대를 잇고, 세대를 건너서도 계속된다. 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송두리째 날린 아버지(백현진)는 가족이 살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안고 아들 변혁준처럼 '거미인력'의 초고액 일당을 좇아 위험한 노동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노동재해 보호원 사고조사관 음연주(고민시)는 40년 전 열악한 노동 환경 속 생존과 존엄을 위해 싸웠던 방직공장 경일방직의 여공이다. 그의 사연은 실제 여성 노동자들에게 인분을 투척한 1978년 동일방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윤 교수는 "단순히 현재뿐만 아니라 40년의 시차를 오가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잔인하고 비극적인 세계의 인식"이라며 "이런 문제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에서도 공포·호러물에 노동과 생계에 대한 풍자를 심어둔 '꿀알바'에 대해 주목했다.
포브스는 "자본주의는 마침내 직장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수많은 사람이 월세와 빚 독촉, '지난번 말씀드린 건과 관련해 다시 연락드린다'고 시작하는 윗선의 이메일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살아가는데, 굳이 괴물까지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라고 했다.
이어 "'꿀알바'는 이 기막힌 현실의 아이러니를 정확히 꿰뚫고, 진짜 괴물까지 등장시켜 우리가 처한 현실의 부조리를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며 이 작품을 '사무실 전자레인지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쯤 해본 직장인들을 위한 코미디'라고 소개했다.
넷플릭스 '꿀알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