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원작자 최종림작가의 여행수필 < 티그리스의 강마을 이야기>

이원희 기자

등록 2025-08-03 13:12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만 마일의 여행이 값지다"

지식은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여 도전하라. 와이드한 세상으로 -최종림-


< 티그리스의 강마을 이야기>


티그리스 강 마을 술레만 아랫길은 아침 안개가 갓 걷히고 노오란 햇살이 굽어가는 외길을 찬연히 비추어 가고 있었다. 오십 리 외길이 만만찮다.

나그네 걸음 앞에 벌써 서늘한 외로움이 앞선다.

종일 이 티그리스 강길을 걸어 굽타까지 가 그곳에서 큰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가는 길에는 밥집은 고사하고 인가라고는 없는 갈대와 모래 둔덕의 강물만 보이는 곳이다.

나는 어제 주막 아주머니에게 오늘 참으로 먹을 빵에 양파와 양고기를 넣은 도시락을 준비하게 했었다.

이번 답사 여행 중 옛날 아테네에서 학교 다닐 때 여름 방학을 아껴 이 부근 바빌로니아 고대 유적을 헤매고 다니던 그때 밥 먹듯 굶었던 기억이 섬뜩하게 아직 남아 있는 경험 때문이었다. 그때 한 번은 먹을 것을 못 찾아 점잖은 나그네 선비로 굶어 죽을 뻔도 했었다.

하, 참...


10시 방향 조금 넘었는데 벌써 더운 열기가 만만찮다.

겨드랑이에 땀이 젖는다. 뽀오얀 굽어져 가는 길고 아무도 없는 강길에 혼자가 참 을씨년스럽다.

가끔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행여 조랑말이나 당나귀 묶은 수레바퀴에 몸이 가벼운 노인네나 어린 초동이 타고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다림에서 말이다.

강이 굽어가는 둔덕이나 이 마른 사막판에서 어찌 이리 시리도록 하얀 꽃들이 인심 가득히 피어나 나그네 마음을 저미어 붙잡는지...

강 너머 메마른 사막, 사막...

그 너머 허공 위 하늘은 풍성하다. 정겨운 푸름과 푸름이 또 겹치는 아득한 저 너머에는 외계인이 사는 우주일까, 하느님이 계시는 천국일까...

어떠하든 이 먼 길을 원시인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사막의 한가운데 강길을 걸어가야 하는 내게는 상상도 금물인 당치 않음이야.

"야, 최종림, 꿈 깨셔. 두 눈 잘 뜨고 먼 길이나 잘 걸으시오."


아직 아침인데, 아니 이른 더위가 나를 힘겹게 했다.

점심때 즈음이나 지났을까. 습관처럼 뒤를 돌아보던 그곳에 당나귀 수레가 아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멀리서 점처럼 걸어오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점 같이 작게 보이던 사람이 차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 나보다 좀 더 빨리 걷는 사람이겠거늘 하며 좀 더 걸음을 천천히 줄여 그 사람이 지나쳐 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그가 지나쳐 가지를 않아 뒤를 돌아보니 아직 한 백 미터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차림새가 여자였다. 나는 그녀가 얼른 지나쳐 가도록 더 걸음을 느리게 하여 걸었다. 그런데 그녀는 한참을 지나도 나를 지나쳐 가지 않았다. 웬일인가 하고 뒤돌아봤더니 한 오륙십 미터 떨어져 오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도록 히잡을 쓴 젊은 여자였다.


나는 그녀가 나를 지나쳐 가길 바라며 길 위에 선 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도 걸음을 멈춰 선 채 떨어진 만큼의 거리에서 먼 들판을 여유 있게 둘러보다 가끔씩 내가 움직이는지 곁눈질을 하곤 하며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허 ㅡ 참 딱한지고...

하는 수 없이 나는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반 마장 정도 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도 걷고 있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 그녀도 뒤처지지 않게 나를 따라왔고, 천천히 걸으면 속도를 줄여 여전히 거리를 일정하게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 더위에 지쳤는데, 상당히 피곤한 경황에 놓인 나를 스스로 발견하고 실소하였다.

하지만 날 뒤따라오는 저 여자의 마음도 십분 이해해 보려 했다. 나를 무단히 지나쳐 가지 못하고 있는 저 여인의 마음도 답답하리라.

갑자기 무안해지기까지 했다. 

이슬람 율법과 엄한 풍습을 하늘처럼 따르는 무구한 이곳 티그리스 강변가 여인들은 함부로 낯선 남자를 외길에서 가까이 지나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음이리라.

아주 젊을 때부터 긴 여름 방학 때면 놓치지 않고 이곳의 기원전 고대 자료들을 찾아다니며 경험한 이 사람들의 사는 관습을 모를 리 없는 나였다. 

미안하고 난감하였다.

어쩌면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를 저 여인을 앞세워 보낼 순 없을까 생각해 왔지만 묘안이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몇 번 주춤거리다 뒤돌아서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갈 길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녀에게 먼저 지나가라고 비켜주는 시늉을 했다.

그녀도 잠시 수줍고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만 고갯짓과 함께 손을 가로 흔들며 멈춰 섰다.

"아이고..."

참 ㅡ 답답하고 천진한 처녀야, 어쩌자고 지친 나그네와 길 실랑이를 이리 하자는 거니...?


분명히 앞장서 먼저 나아가지 않겠음을 표한 여자를 어찌 떠밀고 뒤따라 갈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손을 들어 수인사를 하고 편히 걸음을 재촉해 걸었다.

Al Mutassim을 떠나 백 리 길을 반쯤은 운 좋게 달구지를 얻어 타고 Al Dulaiya에 어제 왔고 오늘 다시 약 칠십 리 길 Al Yathrib로 티그리스 강둑 길을 마냥 가고 있다.

갑자기 목월 선생님 생전 조지훈 선생님과 필담으로 주고받은 <나그네> 시가 그립도록 생각난다. 그 시에 익는 술이 없음 시가 안 되듯 나도 이쯤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과 김치가 반드시 있어야 할 진데...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


두어 마장쯤 왔을까, 온통 더워 지저귀고 꼬리짓하며 날아다니던 물새들도 덤불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심한 허기를 느꼈다. 쓸데없는 실랑이로 밥때를 놓쳤다. 제법 가파른 강둑을 내려와 강물에 가까운 마른 풀밭에 자리를 하고 가지고 온 점심을 꺼냈다. 양고기와 양파, 토마토를 긴 빵에 넣은 이곳 사람들의 간편식이다.

물을 마시려 고개를 드니 마침 나를 괴롭힌 히잡 쓴 그녀가 강둑에 나타났다.

나는 거침없이 물병을 들어 올리며 물을 권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반으로 썰어진 바게트빵 반쪽도 들어 나눠 같이 먹자는 시늉을 했다. 몸에 밴 우리 한국식 인사치레였다. 강둑을 지나쳐 가는 그녀를 보고 당연히 지나쳐 가겠지 하고 강물 쪽으로 돌아앉다 얼핏 그녀가 걸음을 멈추는 듯하여 다시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으로 물을 마시고 싶다는 시늉을 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벌떡 일어서 그녀를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내가 서 있는 강둑 아래로 내려왔다.

놀라운 일이다. 내가 권한 물을 마시려, 가던 길을 멈추고 내게로 내려오다니... 몹시 목이 말랐음이 틀림없는 듯했다. 


자못 조심스레 발을 디디며 내려오다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작지 않은 몸이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내렸다.

"... 아 ㅡ 아 조심... 해요"

순간 머리에 침을 맞는 듯 따끔한 땀이 솟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미끄러져 구르려는 그녀의 몸을 손으로 낚아채며 끌어당겼다. 그 상태로 우리는 강둑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렸다.


우리가 간신히 덤불 속에 멈추었을 때, 우린 내가 그녀를 반쯤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이런 낭패가...

이럴 땐 어찌해야 할 줄을 나는 평생 그 많은 곳에서 스승들에게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훑어봤더니 그녀의 다리가 모래 속 덩굴에 감기어 비틀려 있었다. 황급히 그녀의 다리를 덤불 속에서 빼내어 만져보았다.

다행히 굽혀도 지고 뼈에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연이어 나는 그녀의 어깨와 팔 등을 주무르며 뼈가 부러졌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골절상은 없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온몸을 다급하게 만져보는 순간 깜박 겁 없던 내가 민망해졌다. 그러는 황급한 순간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강둑으로부터 거꾸로 누워있었다.

감은 그녀의 속눈썹이 할리우드 여배우의 가짜 눈썹보다 길었다.

그리고 우윳빛 비단보다 고운 그녀의 피부는 옅은 땀 내음이 풍겼다.

왼쪽 뺨 아래 목덜미는 내가 그녀를 붙잡을 때 손에 긁힌 듯 붉게 얼룩져 있었다.

걱정이 되어 그 부분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그녀가 눈을 떠 놀란 듯 강둑 아래 거꾸로 누워있는 우리 모습을 고개를 들어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이쎄 깔라...

엔닥시 이세... 데스삐니데스... ?

이딴에 까네때 라소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요. 조금 발을 헛디뎠을 뿐이에요... 아가씨"라고 말하며 그녀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떠 나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붉게 긁힌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에도 이네 리고... 페네때 꼬끼노... 까네떼 디뽀따. 덴이네 소바로... 마드모아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나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고대 언어나 희랍어, 라틴어, 아랍어, 그녀가 알아들을 만한 언어는 다 동원하여 그녀를 안정시키고 싶었다.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숨결이 가빠졌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멀쩡히 눈을 떴던 그녀가 다시 숨이 가팔라지며 숨을 멎고 눈을 감는 모습에 크게 걱정을 하며 그녀의 몸을 주물러 주며 말했다.

"아가씨, 어디가 아파요?

여기서는 병원도 멀고... 어디가 안 좋은 겁니까?"

그녀의 가슴에 엎드려 귀를 대보았다. 심장이 용솟음하는 샘물처럼 큰 소리로 들렸다.

나는 신음하듯 독백으로 소리쳤다.

"큰일 났구나... 하느님, 이 처자를 어떡해야 합니까? 손도 잡은 일 없는 이 여자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뭔 인연이 이리도 혹독합니까? 제발 깨어나 아무런 일 없었던 듯해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 내 뺨으로 갖다 대며 그녀가 소생하길 간절히 바랐다.


한참 후 그녀가 눈을 뜨고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수줍음 속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오랜 인연을 쳐다보듯 나를 옆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볼을 붉히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마흐니..." 

"미안해요."

"아니요, 사고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힘 내라는 듯 물병을 건네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맛있게 물을 마시는 그녀의 목덜미가 붉고 파랗게 부어올라와 있었다.나는 스스럼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부어오른 목덜미를 어루만지듯 가리키며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그녀가 성큼 놀라 목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숨이 다시 가빠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바보같은 나는 그녀가 이성에 대한 본능적 반응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만, 숨이 차다 못해... 기절까지 하다니...!?

옛날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나의 손짓에 숨 가빠 하던 한 늙은 여선생을 경험한 일이 기억났다.

깨달음의 한숨이 폐부 깊은 곳에서 뇌리로 퍼져 올랐다.

... 아 ㅡ 하느님, 이렇게 당신이 세상의 여자들도 충실하게 만들어 놓으셔서 수많은 전쟁, 전쟁을 해온 인류의 씨가 마르지 않았군요...?


숨을 고르고 한참을 앉아 있던 그녀가 엷은 미소를 띠우며 다시 옷매무새를 고르고 나를 쳐다보고는 손으로 먼저 가라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고뇌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

그녀에게 정중한 동양식 인사와 함께 그녀의 손에 입맞추고 달아나듯 강 언덕을 뛰어올랐다. 언덕 위에는 하늘 높이 수직 구름이 내가 가야 할 남쪽으로 솟아 있었다. 한참을 뛰듯이 강길을 가다 가방에 들어 있는 양고기 빵과 물이 털렁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다시 강둑 아래로 돌아가 남은 물과 빵을 그녀 곁에 살며시 두고 도망하듯 그곳을 떠났다.

돌아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아디오 사스"라고 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휴 - 하느님... 당신이 바빌론 이곳 땅도 만드시고... 여자들도 만드시고...

가는 곳마다 정녕 식겁하고 살아보라고 성목이도 종림이도 어쭙잖게 이리 만드신 겁니까?

................


여자는 준비되지 않은 사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 준비할 필요도 없는 본연의 사랑만, 자신도 모르고 연유도 필요 없는 그런 사랑 말이다. 

나이도 맞추고 교육 수준도 맞추고 인물, 돈 가진 집안 염치도 보고 사랑하기로 합의하는 그런 계산적인 것 말고 말이다.

친구들 중에 구태의연한 합의 말고 진정 하루라도 족한, 상큼한 사랑을 했노라고 고백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싶다.


"... 야 인마 종림이 너는 있냐 인마... ?"

"그래, 조금 전 있을 뻔했지..."

"... 야 ! 인마, 못했잖아. 겁이 나서."

"... 짜식아, 겁이 났긴... 도리가 아니어서 그랬지."

'인마 그게 그것이지... 군자인 척 하는 너, 속이 뒤집힌다. 하 ㅡ 병신이 주제에... "


강둑을 구르며 같이 미끄러져 내릴 때 흐트러졌던 그녀의 몸매와, 순간이지만 못 볼 걸 보아버린 것들, 그리고 내 어깨와 얼굴을 뭉개며 깊이의 끝이 없을 것 같이 풍만했던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전율케 하였고 순간의 그것은 끝내 나를 깊은 자학의 괴로움으로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점잖치 못한 상황을 초래한 것에 그녀에게 민망함과 함께 미안했다.


상념에 잠겨 두 마장 정도를 갈지자걸음으로 걸어 내려왔다. 하늘의 구름은 가로가 아닌 세로로 기세 있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더운 지방에서 가물 때 자주 볼 수 있는 흰 구름들이다.

강길 오르막 길 앞에 아랍옷차림을 한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눈만 내놓고 이 더운 날에 온통 얼굴과 몸을 가린 여자 한 명과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현듯, 만약 저 사람들이 난감한 상황을 만났던 그 처녀를 만나게 되면... 어찌 될까 하는 염려가 떠올랐다. 

순간 섬찟한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아침에 떠나온 Al Dulaiya 마을에 같이 사는 이웃이 틀림없을진대, 그녀의 모양새와 목덜미 등 예사롭지 않은 몸의 상처를 보고 그냥 넘어갈 사람들이 아닐 터이다.

그것이 동네에 알려지면... 그리고 촌장이 문제를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면... 그리고 당황한 그녀는 나라는 이방인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나를,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은... 그냥 목마른 자신에게 물을 주려 한 사람이라고 과연 나를 변호해 줄까...?

이쯤까지 미루어지는 상상을 꿈이 아닌 현실로 생각해 보니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후 그들이 내 앞을 지나쳐 갈 때 나는 "... 샬 ㅡ 롬..."하고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그들도 인사를 하며 나를 쳐다보고는 내가 정말 이곳에서 보기 드문 동양인임에 놀라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하 ㅡ 최종림 니... 인자 꼼짝없이 큰일났다이"


...............


이곳 이슬람의 형벌은 가혹하다.

그리고 간단명료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사람을 죽이면 자기 목을 내놓아야 하고...

남의 아들을 죽이면 자기 아들을...

남의 아버지를 해하면

자기의 아버지도...

도둑질을 하면 그 손을 끊고...

남의 여자를 넘보았으면... 그곳을 끊어 멸하고...

얼마 전에는 어느 무고한 시인이 꾸란과 그 율법을 함부로 빈정거렸다 하여 시인이 사는 나라까지 가 절멸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율법에 가당찮고 억한 것은, 동서고금에 남녀 사랑은 최고의 그들 가치일진대, 이곳 여자들은 아버지나 오빠들이 원하지 않은 다른 남자를 그녀가 사랑하면, 혹은 그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의 가족에 의해 그 여인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오랜 풍습이다.

이 사람들은 명예를 위해... 소위 명예 살인이라는 공공연한 이름으로 그들의 딸과 누이를 죄책감 없이 죽이는 것을 아무 일 없는 듯 이웃도 눈감아 준다.

나는 아테네와 파리에서 학교 다닐 때 중동에서 온 학교 친구들에게 신랄하게 이 풍습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런데 그쪽 내 친구들 중 누구도 시비를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신기하게 함구로 일관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낯선 동양인과 상관한 일이 그녀의 두려움으로 인하거나 동네 사람들의 풍습화된 편집증으로 인하여 그 처녀에게 불명예가 씌워진다면... 그녀는 그녀들의 오빠들에 의하여 불행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그녀들의 사촌오빠들과 어릴 때부터 정혼 형식으로 언약을 맺고 있어 만약 그녀에게 자기 아닌 다른 남자와 상관한 일이 생기면 그녀의 가족에게 명예 살인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듯 이곳에서는 보통 오래 전에 정혼한 사촌오빠들의 시기심에 의하여 이름 없는 많은 명예 살인이 아직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이런 현지 악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낮에 있었던 그 처녀와의 조그만 해프닝이 마치 미국에서 낯선 여자 손 잡아 주다 한 번 미끄러진 그런 해프닝은 정녕 아니었다.

과연 그 관계 대상 남자인 나는 어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인습과 풍습이 아닌 이성적 논리와 사실을 따지는 내가 사는 사회와 그 언론들과 멀리 떨어진 이 외진 곳에서 내가 처한 상황은 감옥 같은 황망함이었다. 가장 긴한 일은 지금 촌음을 서둘러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일일 것 같았다.


내일까지 바그다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동양인인 나를 이슬람 율법 경찰이 나를 붙잡기에는 바그다드 공항이 최적일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로 비행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바보 같은 짓일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창이 큰 모자를 눌러 쓰고 나귀와 소달구지, 시골 버스 등 아무것이나 닿는 대로 타고 먼 터키 국경을 넘어 이스탄불로 가는 것이 살 길 같았다.

그것도 하느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살려 주신다면... 말이다.


"맙소사 ㅡ 바보 같은 놈...

넌 이제 곧 잡혀가... 그곳이 끊기거나 죽을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인마... 정신 차려...병신... 차라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사랑이나 한 번 제대로 할 걸 그랬어... 바보...

멍청한 놈, 그 처자가 그리 애원했는데도... 머저리보다 못한 놈... 에잇."




최종림 작가


1979년~1984년 프랑스 소르본    파리4대학. 현대불문학 전공

1983년~1987년 프랑스 Artere 문학동인지활동

1987년 서사시집(임마중)프랑스 현지 출간, 문단 활동(한국인 유일)

1985년 미당 서정주 추천 문학정신으로 한국 문단 데뷔

1990년 시집 에삐나 출간

아테네 마라톤 자동차 경주학교, 프랑스 시에즈. 뽕뚜와즈 졸업

한국인 최초 FISA 국제경주 선수 자격증 취득     

1987년 1월 1일부터 22일간 파리-다카르 사하라사막 자동차경주 참가, 한국인 최초 완주

1998년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창작.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한국어로 출간 및 공연

2015년 부산영화제 영화소설 부문  최우수 작품상수상

한국 JSA 전우회 전국 명예회장, 한국 시인협회. 회원


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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