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열두째 날 _최종림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2-26 19:00

모래사막보다 힘든 니제르 평원

사막 열풍. 무한 시계

아가데즈Agadez-타우아 Tawa. 518km.총 주파 7,132km.

길을 잃고 낙담해 있는 제롬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사바나


아침 5시 기상. 

더위와 모기에 잠을 설쳤다. 차 일반 점검. 연료 280L. 계기 작동 오케이.


비박 장소인 구간 출발 체크 포인트를 떠난 10분 후부터 도도한 평원 이 펼쳐진다. 알제의 북 사하라로부터 줄곧 종단해 내려온 우리는 서서히 방향을 틀어 이제 아프리카 서해안, 대서양을 향해 횡단 코스로 접어 들어 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지나는 이곳은 사하라 남부에서 적도까지 전개되는 대초원 지대다. 

깊은 모래, 몇 시간을 달려도

계속되는 초원에는

아프리카 거인의 머리털 같은 억센 풀과

띄엄띄엄 가시나무가 늘어서 있다.


이따금 나타나는 샘 주위에는 

목동과 당나귀가 그림 속 같이 머물러 있고 

낙타와 양 떼가 주위에 흩어져 있다.

 대부분 초식동물이 그렇듯 

가만히 있어도 하느님이 복 준 얼굴이다. 

황무지에는

큰 동물들이 죽어 뼈만 고스란히 남아있고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니제르 평원은 

죽은 듯이 살아있다.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밤톨 집.


오전 11시 오늘 코스는 유럽 포뮬러 스피드 경주 선수들에게 유리한 코스다. 시계가 열려 있고 피스트 상태가 붉은 땅으로 좋아지고 있어 트랙 선수들은 그간 헤매다 잃어버린 시간을 단축하려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미친놈들.." 

또 제롬의 독설이 시작된다. 

"저놈들 오늘 또 몇 놈 비행기 타겠구만." 또 넘어져 유럽 병원으로 후송된다는 말이다.

"야 인마, 로드 북이나 잘 봐... 우린 뭐 별놈이냐?"

우리들 일행 중 예닐곱 명은 트랙을 도는 포뮬러 경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다. 포장 서킷 달리기만 하던 그들 대부분은, 깊은 모래와 구렁텅이에 빠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0km. 초원의 고른 땅 위로 절로 생긴 피스트의 상태가 좋아 평균 시속 150~200km는 족히 유지할 수 있는 코스이다. 하지만 이 초원 어딘 가에 자연 웅덩이가 숨어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속도가 있는 차는 항상 속도 그 자체가 모든 위험을 다 껴안고 있다.


154km. 초원, 초원. 지표가 모래로 변하고 있다. 커브를 돌 때마다 10m 이상이나 차가 바깥으로 밀린다. 그런 피스트에서 가시나무와 바오밥 나무를 피해 가려니 차는 좌우 20m 이상 드리프트(차가 커브 중에 옆으로 틀리는 상태) 되는 미끄러짐으로 아예 왈츠를 추고 있다. 자동차 경주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정해진 회전각을 정확히 타내는 것이다. 속도와 회전각, 지표 상태 계산에 주자의 착오가 있으면 차는 수십 바퀴를 뒤집히며 100m 이상 굴러가 버린다.

198km. 피스트를 잃어 샘가의 목동에게 방향을 물었으나 천진난만한 웃음뿐 말이 없다.

"어이... 갹쏭(소년).. 길..., 길 말이야...길, 가는 길 말이야..."

나는 타는 속으로 또 둥글게 지붕을 그리며,

"빌리지... 빌리지(마을) 말이야 ... 어디로 가냐구..?"

아, 환장한다. 소년은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이다. 나는 애꿎은 제롬에게 고함을 치며 화풀이를 해냈다.

"야, 이 돌머리야, 차 빼..! 되돌아가..! 메르드(똥 대가리)!"

우리는 갔던 길을 40km나 아깝게 되돌아 나와 방향을 30°나 우측으로 수정하여 초원을 가로질렀다. 차바퀴 흔적도, 피스트도 없는 곳의 가장 위험한 질주다. 잿빛 고라니 같은 두 놈이 우리 차 진행 방향으로 앞질러 도망하고 있다. 시속 140km 이상으로 거친 초원을 달리는 괴물은 순식간에 그놈들을 따라잡아 지나쳤다.

답답하고 막막하다. 가던 방향을 30°나 수정해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친 타바라텐 마을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면.. 우린 조난이다.



사막 위의 조개 화석


길을 잃은 나와 제롬은 두려움에 말을 잃은 체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초원을 내달리고만 있다. 로드 북 읽기도 포기했다. 로드 북안내를 벗어난 곳에서 그건 무용지물일 뿐이다.

"갓떼-뭇..마다 빠...!"

나는 차 안이 울리도록 숨통 터지는 고함만 질러대고, 제롬은 얄밉게 실눈으로 내 눈치만 살필 뿐 속도도 내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야...우리 지금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 디아블(악마 같은)!" 제롬은 어깨를 들썩이며 주둥이만 삐죽 내보이고는 말이 없다. "불캉(아주 나쁜 욕. 해석 포기)! 이디엇(바보, 명청이)." 내 지독한 욕을 참을 수 없었는지 드디어 제롬이 말문을 텄다. 

"넌 인마, 프랑스 놈들보다 더 나쁜 놈이야. 뭔 욕을 ... 욕만 배웠냐?" 

"야인마... 액셀러레이터 밟아, 잔말 말구..! 이게 가는 거냐?" 

제롬은 방향을 잃고 하는 운전에다, 내 산만한 욕에 소죽은 넋을 덮어쓴 양 속도를 시속 60km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제롬과 핸들을 바꾸고 30분쯤 지났을 때 제롬이 마치 땅 냄새라도 맡듯 킁킁거리며 멀리 앞에 나타난 큰 나무 한 그루와 로드 북을 번갈아 보았다.

"야! 피스트야... 피스트..! 우리가 맞았어!"

로드 북에 나와있는 198km 지점. 큰 고목이 나타나며 차들이 지나간 흔적이 나타났다. 제롬은 비상 망치로 생명 바(차 안에 둘러쳐진 구명 파이프)를 두들기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아! 줄곧 옥죄어 오던 숨통이 이제야 트이는 것 같다. 우리 차의 주행계기는 320km. 약 120km를 헤맨 것이다.


216km. 모래 피스트를 돌다 나무에 차 엉덩이가 또 부뒷혀버렸다. 제롬이 실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괜찮아... 몹쓸 여자야:.. 버릴 여자 말이야(불어는 명사에 성sex이 있고, 차는 여성으로 '그 여자'라고도 할 수 있음)."

3.308.30km. 종일 달리며 우리가 유일하게 하는 인간 행위는 오줌 누는 일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허리를 펴보는 기분 좋은 순간이다.

평원의 낮은 암석층으로 올라 우린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놀랄 일이 다! 볼일을 보고 있는 발아래 돌들이 조개가 아닌가! 눈을 의심하며 주워 보니 대부분 돌조각의 형체가 완전한 대합조개, 고동, 빗살무늬 조개, 불가사리, 성게로 조개 하나를 집어 드니 묵직한 돌이다. 놀라움에 나는 잠시 암석층에 붙어 그걸 줍느라 정신이 빠졌다.


수억 년 전 태고로 날아가 

바람 맑은 바닷가에서 나는 

조개 줍는 화석인의 꿈을 꾸고 있다. 

인간 삶은 물론, 

우리가 가진 수천 년 역사가 

이 화석 밭에서는 무색해진다.

아하! 미국도 중국도 그리고 우리나라 경주 불국사도 

언젠가 한 번은 바다로 내려가 버리고 말겠구나! 

이 사하라가 옛날에 바다 밑이었듯이...


언젠가 내가 미케네 문명권인 크레타 섬 정상에서 조개 화석을 주웠을 때의 감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곳은 활화산 지대로 섬이 꺼지고 바다 밑이 튀어 오를 수 있겠지만, 이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 사하라 사막 남쪽이 바다였다니..

멀리 후미에서 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는 차가 눈에 띄면서 이런 내 감회는 후닥닥 사라져 버렸다.

가자..!


오후 6시 51분. 친 타바라텐 마을 체크 포인트 통과. 모래판에는 수백 명의 토인이 몰려와 도착하는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그들의 차림새를 보니 마음이 안타까워 옴을 어쩔 수 없다. 쌍둥이 같은 아이를 서너 명씩 데리고 흙먼지 판에 앉아있는 여인들, 아이들은 눈과 코에 달라붙는 수 십 마리 파리 떼를 쫓는 것도 포기한 채 그것들과 같이 다니고 있다. 이 모든 눈앞의 것들을 아프리카 전통적 삶의 형태라고 봐주기엔 억지감이 간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문명 속에 사는 우리들의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가 사는 곳보다 놀랍도록 맑고 깨끗하다. 넓은 초원과 사막이 그러하고, 밤은 천 배나 정결하고 아름답다.


오늘은 하늘 수박밭 사이에 자리를 폈다. 

침낭 속에 드니 마침 보름달, 지친 심신이건만 

잠을 이룰 수 없누나.


여윈 얼굴의 골을 타고 넘쳐 내리는 달빛을랑 

바람이 설레어 걷어갈 때마다 

다시 뜨이는눈.

달이 부시누나. 

이편에 하늘 수박이 달빛에 밀려 

등 너머로 막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지나는 길목에 마을 사람들이 나앉아 있다. 약을 얻기 위해서다.

경주 내내 나를 다독여 준 자랑스런 태극기. 모래바람에 닳고 찢어져 버렸다.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1. ♦다음 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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