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맥] 해외 (호주) 문학 동인지 '캥거루' 연재 수필-김은희-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09-21 22:46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성남에서 자랐다. 1992년, 남쪽 하늘 아래 새로운 삶을 꿈꾸며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이주했다. 시드니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수학하고, 웨슬리 신학대학과 AIFC대학에서 신학과 상담을 전공했다. 현재는 상담과 미술 심리치료사로, 마음의 풍경을 듣고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2011년 『모던포엠』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드니한국문학작가회 소속이며 문학동인 캥거루 문우들과 글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김은희 수필가


너도 할 수 있단다, 오징어순대

 

진아! 네가 세상에 작은 별처럼 반짝이며 태어났을 때, 이모는 노처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지. 

“사람 노릇하려면 시집가야지. 언제까지 부모 걱정만 시킬 거냐?”

이런 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지만, 당시 이모는 결혼 생각이 없었단다. 특별히 비혼을 고집했던 건 아니야. 이제 너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단지 누군가와 삶을 함께하고 사랑을 약속하는 일이 자신이 없었단다.

사랑은 한 잎 한 잎 젖어 드는 가랑비처럼, 서서히 마음을 적셔야 한다고 믿었지. 소나기 같은 사랑은 열병처럼 찾아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어. 그런 사랑은 깊이가 없고, 한순간 타올랐다가 재처럼 흩어질 것 같았거든. 사랑은 마치 사골국처럼,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나는 것이라 믿었어. 그러나 세상은 너무 바빴고, 그런 깊은 정을 들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했지.

너는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니? 사랑은 때로 강물 같고, 때로 바람 같단다. 어떤 이에게는 격정적인 폭풍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잔잔한 파도가 되기도 하지. 중요한 건, 사랑에도 정답은 없다는 거야. 인생이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듯, 사랑도 마찬가지란다.

 

이모부를 만난 건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이야기의 한 장면 같았단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인이 되어 버렸지. 결혼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나였지만, 네 손을 살포시 잡아본 그날, 결혼이 간절해졌단다. 너 같은 천사를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세상이 더 빛날 것만 같았어.

벌써 18년 전 일이구나. 시간은 한 장씩 찢겨 나가는 달력 같기도 하고, 손안에서 녹아내리는 눈송이 같기도 했어. 이제 나보다 키도 크고, 표정조차 어른스러운 숙녀가 된 널 보면 가슴이 뭉클해져. 첫 조카인 네가 이모에게는 딸이자 천사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석이란다. 네가 직접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다고 했을 때, 가슴 한쪽이 뭉클하게 저렸단다.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렸나, 감격스러웠어. 뭘 만들지 고민했단다. 라면과 떡볶이, 계란 프라이 정도만 만들 줄 아는 네가 할 수 있는 요리가 뭘까? 생일상에 올리기에 그럴듯한 음식은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떠오른 게 오징어순대였어. 네가 엄마를 위해 직접 만들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자, 이제 이모가 말하는 대로 해봐. 이모가 도와줄 테니 겁먹지 말고. 요리는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놀이란다.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담는 가장 가치 있는 여정이지. 대충 하려면 방법이 있겠지만, 제대로 잘하려면 끝없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 요리야. 이모는 요리하면서 마음을 치유하기도 해.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고민이 정리되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일렁이던 화가 거짓말처럼 녹아버리기도 하거든.

먼저 재료를 다듬어 보자. 어른 수저를 오징어 속에 넣어 내장을 긁어내고, 투명한 뼈를 쭉 잡아 빼고, 눈과 입도 제거해야 한단다. 그래, 징그럽지? 처음엔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때때로 용감해져야 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마주하기 어려운 일도 내 손으로 해내야 할 때가 있어.

깨끗이 다듬어진 오징어를 두고 속 재료를 준비하자. 양파, 고추, 홍고추, 당근, 삶은 당면을 잘게 다져볼까? 아직 칼질이 어렵다면 큼직하게 자른 후 채소 다지기를 사용해도 괜찮아. 칼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단다. 능숙한 요리사라도 방심하면 손을 다치는 건 한순간이니까.

진아! 칼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하듯이, 말할 때도 주의해야 한단다.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칼이 될 수도 있거든. 가능한 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따뜻한 말 한마디가 햇살처럼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있으니까.

이제 다져진 채소에 달걀, 다진 마늘, 간 돼지고기, 으깬 두부를 넣어줄 거야. 전분 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오징어 안쪽에 잘 발라주고, 다진 재료를 넣어주자. 속은 70%만 채우는 게 중요해. 너무 가득 채우면 옆구리가 터져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인생도 요리와 같아. ‘적당히’의 균형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어렵단다. 이모도 아직 그 기준을 배워가는 중이야. 속을 채운 오징어를 꼬치로 듬성듬성 꿰매듯 막아준 뒤 찜기에 올려 20분 정도 쪄주면 완성! 식기를 기다렸다가 접시에 상추나 깻잎을 깔고, 예쁘게 담아보자. 쪽파를 쫑쫑 잘라 살짝 뿌려주면 더 보기 좋을 거야.

 

자, 너의 첫 요리가 완성되었어. 오징어순대는 사실 쉬운 요리는 아니란다.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도 오징어순대를 추천한 이유는 네가 이 요리를 해내고 나면 어떤 요리도 도전할 자신이 생길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진아! 인생에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어. 때로는 겪지 않아도 될 힘든 일들도 있겠지. 하지만 이모는 네가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먼저 도전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삶을 살았으면 해. 배우면서 사는 것이 곧 삶이란다. 반백 년이 넘은 이모도 매일매일 배우고, 느끼고, 깨닫고, 반성한단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네 삶을 살아가렴. 너를 사랑하는 우리는 언제나 네 곁에서 기도하고 있을 거야. 이모는 언제나 널 응원해. 사랑한다, 진아.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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