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바로 서야 민주정치가 바로 선다

어느 나라든 민주주의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우리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그 과제를 완수했다. 두 번째 단계는 민주주의를 사회 속에 안착시키는 일로, 지금 한국 사회는 이 과제를 둘러싸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다원적 정당체계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제도화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정당체계와 노사관계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어느 민주주의 국가도 사회평화를 구현할 수 없다. 독일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당시로써는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졌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회갈등은 정당체계와 노사관계로 수렴되지 못했다. 그보다는 국가 지향적 동원과 사회 지향적 운동이 충돌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는데, 그 귀결은 나치의 집권이었다. 전체주의와 세계대전의 비용을 치르고 나서 전후 독일이 발전시킨 것은 정당 중심의 민주정치와 노사관계 중심의 사회적 시장경제였고, 이를 바탕으로 비로소 독일 민주주의는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국가와 국민, 운동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를 하나의 가치로 일원화하는 힘으로 작용하며, 일원주의와 민주주의의 만남은 선거를 통해 전체주의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경험한 탓도 컸다.
다원적 정당체계는 사회갈등과 집단이익의 분화를 국민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억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갈등극복론이나 집단이기주의란 말이 정치를 지배하면 다원적 정당체계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시민은 복수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기초로 정당들이 차별화되어야 그들 사이의 경쟁이 사회적 내용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시민 집단에 기반을 둔 정당 간 경쟁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시키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정당들 사이의 경쟁이 시민 집단들 사이에서 이익의 조정과 가치의 공존을 가져오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정치가 사회를 통합할 수도 있고 분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족주의적 통일론이나 민주-반민주,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와 같은 갈등은 사회적 의견을 상호배타적으로 양극화하는 데 기여하는 반면, 조세나 재정, 소득 정책 등 사회경제적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여러 사회집단들 사이의 요구를 조정해내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갖는다. 자본주의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인 노동과 자본 등 다양한 집단 이익의 자유로운 표출-결집-집약이 민주주의 정치과정과 병행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정당‘들’ 사이에 존재한다. 하나의 정당이 국민을 대표하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라면 정당들은 시민을 나눠서 대표하고, 그들의 이익과 열정을 달리 결집해야 한다. 그간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주장이 현실을 호도하는 기능을 한 것은, 노사를 포함한 생산자 집단들의 조직화와 관계없는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국민을 앞세워 소통과 인권, 정의 등 보편이익을 최대로 강조했음에도 사회가 최대로 분열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네트워크정당이니 모바일투표니 오픈프라이머리니 하면서 당원 구별 없는 국민 참여를 강조했던 것이 실제로는 친당권파니 비당권파니 하는 당내 계파싸움의 수단이 되고 정당을 분열 위기로 몰고 간 것도 같은 이유다. 모두가 좋아하는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들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지지 기반에서 정당 간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정당들이 사회갈등의 실질적 조정자 역할을 진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분 간의 차이에 기반을 두지 않는 전체는 내용 없는 가짜이기 쉽다.
지금 야당이 정당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습관화된 국민 앞세우기보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누구의 정당인지부터 분명해져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사회적 기반 위에서 정당들이 단단하게 조직될 때만 민주정치는 사회통합의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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