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는 교제폭력
“그렇게 입지 마” “○○ 만나지 마” 교제폭력의 시작은 ‘강압적 통제’라고 한다. 2007년 에번 스타크 미국 럿거스대학 교수가 처음 사용한 ‘강압적 통제’는 “상대방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비난하기, 가족·지인 등에게서 고립시키는 등의 가해 행위”를 전반적으로 일컫는다.
처음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 욕구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헤어지자”는 말이 살인의 방아쇠가 됐다. 다른 이유도 많다. 가해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잠자는데 불을 켜서” “텔레비전 전원을 끄지 않아서”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피해자들을 죽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집계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이다. 살인이 미수에 그쳐 목숨을 건진 여성은 최소 311명에 이른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까지 추정하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이달만 해도 일주일 새 4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연일 교제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 범죄엔 아직 법적 정의도 공식 통계도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제하는 법은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이 전부다. 현행법에선 교제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입법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자구책으로 ‘안전이별’ 방법을 찾는다. “큰돈 요구해라” “정떨어지게 진상처럼 행동해라”. 인터넷에서 ‘안전이별’을 검색하면 나오는 조언들이다. 수수료를 받는 ‘안전이별 대행업체’까지 생겼다고 한다. 여성들이 보복이 두려워 안전이별법을 검색해야 하고, ‘진작 헤어졌어야지’라며 피해자만 탓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교제살인 피해자 108명의 사례를 분석한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나는 죽어서야 헤어졌다’이다. 이 죽음의 사슬을 끊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와 국회는 교제폭력을 사적인 일로 여길 게 아니라 법·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해줄 말은 비난이 아니라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의 말이어야 한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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