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부와 권력세습

세상에서 한국인들처럼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말한다. 한때는 칭찬으로 들었지만 이제는 꼭 칭찬만은 아닌, 어떻게 들으면 삶의 가치가 전도되었다는 힐난으로 들릴 듯한 말이다.
수년 전부터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해도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악착 같이 일을 하려고 하는 주관적 심성구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일 중심적 인간이 되었을까.
사회학적 관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식을 들먹인다. 자식이 어리면 어린대로 남 하는 만큼 가르치기 위해서, 자식이 컸으면 큰대로 남 부끄럽지 않게 혼수라도 장만해준다거나 집이라도 한 채 물려주기 위해서 일해야지요라고 답한다. 한국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자녀지향성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범죄조차 정상참작이 되고, 행위자 스스로도 자기합리화를 여기에서 찾는 경우가 흔하다.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한때는 미덕이었지만, 이제는 꼭 미덕만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자아실현을 스스로 유예하고, 좌절된 자기 실현을 자녀를 통해 대신 실현하려는 태도는 이기적 심성의 연장이요, 가부장제적 유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녀지향적 태도는 부나 시간의 사회환원을 억제하며, 불법 상속과 탈법적 세습의 원천이기도 하다.
최근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들로 부각된 재벌이나 언론사, 일부 사학의 세습경영을 보면서 아직까지 굳건하게 남아있는 봉건적 세습과 상속관행이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어지럽히는 근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사실 부모가 하는 일을 자녀가 세습하는 것은 사회적 자본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하는 일을 자녀들이 보고 듣고 배우며 안면과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전수되기 때문에 사회적 경쟁에서 여러 가지 유리함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부와 권력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흔히 부와 권력의 세습에는 탈법과 부정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문제를 일으키는 현장에는 거의 틀림없이 정의롭지 못한 부와 권력의 상속 욕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반세기, 해방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역사적 모순과 정치적 억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나름대로 사회적 통합을 유지해온 이면에는 역동적인 사회이동이 가능했다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구조적 불안정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점차 사회이동의 통로가 막히고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민초들의 간절한 소망이 좌절되면서 사회해체의 징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의 탈법적 상속의 저편에는 빈곤을 세습당하는 사람들의 절망이 있다. 특히 탈세나 변칙상속은 요즘처럼 경쟁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사회적 박탈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들은 절망을 분노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녀를 향한 대리적 욕구실현구조가 한국문화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아니라 단지 지난 50년간의 정치경제적 고난 때문에 형성된 망탈리테(집합심성)라면, 이제 자아실현의 틀은 사회적 공공성을 향해 좀더 개방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가 아니라 ‘부나 권력, 또는 명예’ 어느 하나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도록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비뚤어진 욕망을 순화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조세정의가 확립되고 부의 사회적 환원이 강화되는 것, 이것이 자아실현구조의 변화를 촉진하는 외부적 조건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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