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 편 산문 한편 ⓬

박상봉 기자

등록 2025-10-01 21:07

| 시 | 10월


박상봉


사방의 나뭇잎처럼 서 있는 그대


그리워 그리워


장다리꽃 너머로 엽서를 띄운다


종일 문 밖에 서서 기다리는 가을


답장은 오지 않고


밤은 깊어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고


어둠은 적막에 갇혀 말이 없고


어느 사이에 내가 살던 집도 없어지고


받는 이의 주소도 깜빡 잊어버리는 때 쯤해서


다시 엽서를 쓴다


말하라 말하라


사방의 나뭇잎처럼 서 있는 그대


대답하라


| 산문 | 10월


10월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마다 편지 봉투가 열리듯 사각거리고, 바람이 스쳐가는 길마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듯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을 더듬으며 사람들은 문 앞에 선다.


답장이 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면, 10월의 하늘은 더욱 높아진다. 허공의 푸름은 소식을 대신할 수 없고, 비어 있는 우체통은 텅 빈 가슴과도 닮았다. 


나무들은 엽서를 대신한다. 단풍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멀리 흘러가면, 그것이 곧 안부다. 그러나 받는 이의 주소가 없어진다면, 잎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장다리꽃은 계절을 몰라 가을 들녘에 서 있다. 제철이 아님에도 피어난 꽃은, 답장 없어도 편지를 쓰는 마음과 닮았다. 어긋난 시간은 곧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잎맥마다 적힌 글자는 계절의 언어가 아니라, 그대에게 띄우는 신호다. 높이 솟은 꽃대는 깃발 같고, 그 위에 맺힌 꽃송이는 기다림의 불꽃 같다.


오래된 편지지의 잉크 냄새 같은 장다리꽃 향기가 사라진 시간을 다시 불러낸다.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광경은 답장을 대신하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멀리 날아가며 남긴 울음소리가 하늘에 선명히 남아, 그리움의 파장으로 퍼져 나간다.


10월의 밤은 적막하다. 어둠은 말을 아끼고, 별빛조차 무심하다. 침묵 속에서만 전해지는 목소리가 있다. 대답은 없지만, 그 침묵이 곧 또 다른 응답일지 모른다.


계절의 고요 속에서 옛집을 떠올린다. 그 집은 이미 자취를 감췄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문간에 기대 서 있는 그림자가 있다. 사라진 집은 기다림의 무대를 끝내 비워내지 않는다.


주소를 잊어버린다는 건 결국, 세상에 없는 곳을 향해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쓴다. 아무도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닿을 것이라 믿으면서.


그래서 10월은 편지 같은 계절이다. 쓰여지지만 부치지 못하고, 부쳐지지만 닿지 못하는, 그러나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계절이다. 글은 바람 속으로 흩어지고, 가슴 속에는 여백이 남는다.


다시 엽서를 꺼내 쓴다. 10월은 끝내 대답하지 않지만, 기다림 자체가 계절의 의미이기에. 나뭇잎처럼 흩어지는 그대여, 대답은 없어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 로 문단활동 시작. 주요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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