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을 말하기 전에…

역사는 우연한 사건에 의해 뜻밖의 방향으로 진행되곤 합니다. 독일 통일의 경우도 그 한 예입니다. 1989년 여름을 지나며 동독 주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자 동독 지도부는 부득이 호네커 서기장과 슈토프 총리 내각을 퇴진시키고 개혁에 나섰습니다.
우선 동독 주민들이 가장 갈망하는 서독에의 여행 자유화 조치를 마련하여 11월 9일 초저녁 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의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였습니다.
여행 자유화 조치의 내용은 조건 없는 여행허가 신청이 11월 10일부터 가능하다는 것이었을 뿐 여행 자유화가 당장 시행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한 기자의 추궁에 당황한 샤보브스키는 그만 당장 시행된다고 하는 바람에 이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 개방을 요구하였고, 국경수비대는 상부의 방침을 구하였으나 개방을 하지 말되 강력히 항거하는 자에게는 개방해 주라는 무능한 대응을 하는 등 허둥대다 장벽은 그냥 열리고 만 것입니다.
동독 TV 방송은 19시 30분 서독 등 외국으로의 여행을 조건 없이 신청할 수 있다고 전했지만 서독 TV 방송은 20시에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고 방송해버린 것이 장벽 붕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로써 이른바 동독 정부의 질서 있는 정책 시행은 불가능하게 되고 정부의 권위는 무너지고 동독의 민주화는 더욱 촉진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샤보브스키의 실수는 언론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수'라는 재미있는 평가를 받았고 기자회견에 들고 나온 서류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샤보브스키의 실수를 이끌어낸 기자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ANSA 통신사의 동독 특파원인 리카르도 에허만이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늦게 도착하여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단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짜증이 난 상태에서 적당히 회견을 마치려는 샤보브스키를 향해 '언제부터 시작하겠다는 겁니까?(Ab Wann, Wann tritt das in Kraft?)'라고 퉁명스럽게 질문하자, 샤보브스키는 당황하며 '내 생각으로는 지금 당장(Nach meinem Kenntnis ist das sofort, unverzueglich)'이라고 말해 버린 것입니다.
에허만의 부모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탈리아 플로렌스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그곳이 맘에 들어 그만 주저앉아버렸고 에허만은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동독 특파원으로 오래 근무하다 다른 곳으로 전출되었으나 후임 동독 특파원이 병가를 내자 임시로 다시 투입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역사를 바꾸는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2008년 독일 정부로부터 독일 통일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도 받았습니다. 역사의 큰 전환에 관련한 일이지만 어쩐지 코미디 같기도 합니다.
독일 통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애당초 독자적인 통일부서도 두지 않았고 특별한 통일정책도 없었던 독일은 통일을 이룬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많은 독일인들은 통일은 별다른 노력 없이 주어졌을 뿐 아니라 갑자기 오게 되어 여러 문제를 야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통일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통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서독 정부나 국민이 기울인 노력들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하늘의 도움은 결코 우연히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서독정부와 국민이 할 도리를 다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하늘이 돕지 않았을까요? 서독정부는 통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다만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동포를 돕기 위한 교류 협력의 잔잔한 노력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런 것들이 동독정부의 서독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 동독이 사실상 서독에 의존하게 만들었고 동독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결과가 되어 통일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통일정책은 통일이라는 말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북한 동포를 돕고 그들의 마음을 사는 친화적 노력입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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