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태어난 시의 언어, 섬세하고 깊은 감성의 문장으로 담아
경기도 시흥시 정이마을방송국에서 ‘시흥시야’ 진행
맨발 퍼포먼스는 고통의 표식이자 생존의 선언이다. 시를 통해 통증을 딛고 일어서는 낭독하는 시인 박은선(사진=박은선 제공) 고통이 시로 피어나는 자리
“몸은 아프지만, 언어는 그 고통 위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박은선 시인의 첫마디는 마치 시 한 구절처럼 고요했다. 경기도 시흥의 정이마을방송국 스튜디오 한켠, 커피 잔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21년째, 여전히 투병 중이다. 혈관염과 베체트병, 쇼그렌증후군 등 자가면역질환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언어’라는 생의 장치를 놓지 않았다.
“통증은 제게 언어의 모태였어요. 몸이 버티는 한, 시는 계속 태어나더군요.”
통증을 딛고 걷기 시작한 시인
2004년, 유방암 진단은 그녀의 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처음엔 죽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득, 죽음조차도 ‘언어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녀는 수술 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맨발 퍼포먼스는 고통의 표식이자 생존의 선언이었다.
“맨발은 제 존재의 가장 솔직한 상태예요. 아픔을 감추지 않고, 흙과 맞닿으며 시를 걷는 거죠.”
지닌 7월 수원의 시집전문 독립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 『갈비뼈에 부는 청초한 바람』북토크를 가졌다.『갈비뼈에 부는 청초한 바람』 – 통증의 기록
그녀의 시집 『갈비뼈에 부는 청초한 바람』에는 고통과 회복이 교차한다. 시 속의 ‘갈비뼈’는 아픈 몸의 구조이자, 그 안을 스치는 바람은 생의 의지다. 그녀는 이 시집을 “고통의 해부학이자, 치유의 사운드트랙”이라 부른다.
“살아 있는 모든 건 다 조금씩 부서져요.
하지만 그 부서진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거기서 시가 자랍니다.”
병실에서 태어난 시의 언어
그녀는 투병 중에도 시를 썼다. 병실 침대 머리맡엔 늘 작은 노트와 펜이 있었다.
“진통제보다 시가 더 오래 버티게 하더라고요.”
그녀는 문장 하나를 짓기 위해 통증을 참았고, 그 통증은 다시 문장의 일부가 되었다.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병이에요.
그게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언어는 저를 지켜줬어요.”
박은선 시인은 지금도 매달 병원에 간다. 치료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시는 그 삶의 변주가 되었다. 그녀는 시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고, 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왔다.
시흥 정이마을방송국 ‘시흥시야’를 진행하는 박은선 시인. 매주 둘째 넷째 수요일 저녁 7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시흥의 ‘시흥시야’, 지역의 목소리를 잇다
그녀는 시흥 정이마을방송국에서 ‘시흥시야’를 진행한다.
“지역의 숨결을 문학으로 담아내는 일, 그게 제 두 번째 호흡이에요.”
그 방송은 시흥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지역 문학을 이어주는 감성 채널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요하지만 단단하다.
“큰 무대보다 중요한 건, 작은 마을의 언어를 지켜내는 일이죠.”
시와 음악의 만남
박은선 시인은 작사가로도 활동한다. 그녀의 대표곡 「홍매화」와 「뗏꾼의 노래」는 삶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와 노래는 둘 다 숨이에요. 제가 가진 숨의 길이가 짧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싶어요.”
지난 5월에 전남 화순의 ‘산아래 詩 만연책방’에서 맨발 시 퍼포먼스를 펼쳐 박수갈채를 받았다.낭독하는 시인 – 관객과의 호흡
그녀는 스스로를 ‘낭독하는 시인’이라 부른다. 유튜브 채널과 수원의 시집전문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 낭송과 북토크를 이어가며 독자들과 만난다.
“시를 읽는 건 제 몸의 진통제예요. 읽을 때마다, 몸의 통증이 잠시 잦아들어요.”
수원시 팔달산 자락에 있는 시집전문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는 지난 7월 10일 박은선 시인을 초청해 북토크와 시낭송회를 열었다. 이날 박은선 시인은 네 번째 시집 『갈비뼈에 부는 청초한 바람』에 담긴 섬세하고 깊은 감성의 문장을 독자들과 직접 나눴다.
8월 30일에는 안도현 북토크에 앞서 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날 박은선 시인은 ‘연탄’과 ‘옷감’을 소재로 하는 독특한 시 퍼포먼스를 화사하게 펼쳐 독자들의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게 했다.
5월에는 전남 화순의 ‘산아래 詩 만연책방’과 경북 경산시 ‘산아래 詩 백자로137page 책방’에서 잇달아 시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이밖에도 5월 전남 해남의 인송문촌토문재에서 열린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심포지움, 8월 광복절 80주년 기념행사, 10월 지리산 문학제 등에서 시낭송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박은선의 시는 통증 속에서 태어나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치유의 숨이 된다.(사진=박은선 제공)고통 이후의 생
“고통은 제 인생을 망친 게 아니라, 시를 만나게 한 통로였어요.”
그녀는 통증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언어의 근원으로 삼는다. 그녀의 시는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끝내 살아내려는 의지의 문장들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직도 회복 중이에요.
아마 평생 회복 중일 거예요.
하지만 그게 시인의 일 아닐까요?
상처 속에서도 언어를 피워내는 일 말이에요.”
그녀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불꽃 같은 생의 열기가 느껴진다. 박은선의 시는 통증 속에서 태어나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치유의 숨이 된다.
박은선의 시를 읽으면 아픔이 살아있는 증거로 느껴진다. 그게 바로 박은선 시의 힘이다.(사진=박은선 제공)기자의 말
박은선 시인의 시는 ‘아픔의 미학’이 아니다. 그건 상처의 견고한 증거이며, 언어로 새겨진 생의 지속이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아픔이 덜해지는 게 아니라 아픔이 ‘살아 있는 증거’로 느껴진다. 그게 바로, 박은선 시의 힘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
《인문사회》 기초한자 조정
기초한자 조정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최근에 펴낸 ‘타임스 영어사전’에 몇몇 인터넷용어를 새로 수록했다. 인터넷상의 에티켓을 뜻하는 네티켓을 비롯하여 원래는 돼지고기 통조림 상표지만 인터넷에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도 e메일을 마구 보내는 뜻으로 쓰이는 스팸(spam)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난 1990년부터 30년동안 영어사전에 새로 오른
-
《인문사회》 일이관지(一以貫之)
일이관지(一以貫之) 바둑은 흔히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삶의 철학과 지혜, 전략이 19줄의 반상에 고스란히 담긴다. 한 수가 판세를 바꾸기도 하고, 초반의 포석이 끝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형국을 읽지 못하면 유리한 국면도 금세 흔들리고, 무리수는 전체 흐름을 그르친다. 때로는 승부수로 판을 뒤집는 뒷심이 필요하고, 대마불사(大馬不死)처럼 쉽게
-
《인문사회》 가정 내 갈등
가정 내 갈등 얼마 전 대구에서 사위가 장모를 폭행해 사망하게 하고 딸과 함께 그 시신을 하천에 유기한 사건이 보도돼 많은 사람을 분노케 했다. 이 사건은 지적장애가 있는 가족 간의 갈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가장 가깝고 사랑해야 할 가족 간의 이런저런 갈등이 넘쳐나고, 그중 일부는
-
《인문사회》 진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진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대런 애쓰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이 있다. 기술의 발전과 권력 관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이다. 권력과 자본의 관계를 다룬 것이 '자본론'이라면 기술과 권력의 관계를 다룬 책이 '권력과 진보'이다. 하지만 투쟁적이거나 과장된 어조를 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덤덤한 관찰자의
-
《인문예술》 예술의 사회적 역할
예술의 사회적 역할 "기업의 이윤은 문화에 쓰여야 한다.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후쿠타케 소이치로 베네세그룹 회장) 연말이면 새해맞이 수첩을 구입해 표지 안쪽 면에 이 문구를 적는다. 베네세그룹은 1980년대 초 일본 가가와현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를 예술섬으로 바꾼 출판기업이다. 1970년대 제련소로
-
《인문경제》 형세 읽는 자본시장 전략
형세 읽는 자본시장 전략 손자는 '손자병법' 허실편에서 "병형상수(兵形象水)"를 말하고 있다. 전쟁의 형세는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전략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본시장의 역사도 그런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주식시장의 기원은 17세기 동인도회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주식시장은 투기와
-
《인문정치》 일하는 의회
일하는 의회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지지층 결집만을 노린 극단적 대립으로 입법 기능 마비라는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미국 연방하원의 초당적 의원 모임인 '문제해결위원회(Problem Solvers Caucus)'가 보여주는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7년 1월, 미국 정치가 당파적 양극화로 치닫던 시기에 결성된 이 위원회는
-
《인문사회》 씨앗과 울타리
씨앗과 울타리 주말에 도심 외곽을 지나가다 보면 주말농장을 운영하며 '에코힐링'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이들은 땀 흘리며 흙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 고생한 만큼 알찬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작은 행복은 결코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으로
-
《인문문화》 봄꽃축제 단상
봄꽃축제 단상 전 국토가 가히 꽃밭이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 같은 집 주변은 물론 강변과 도로변, 전국의 산과 들 어느 곳이나 봄꽃들로 가득하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목련까지 활짝 핀 꽃들이 온 산하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원래 봄이 오면 노란 복수초가 눈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것을 시작으로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이어서 개나리
-
한국마사회, 2026년 체험형 청년인턴 60명 채용…"취업 사다리 역할 톡톡"
한국마사회, 2026년 체험형 청년인턴 60명 채용…"취업 사다리 역할 톡톡"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가 청년 구직자들에게 실질적인 직무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취업 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2026년 체험형 청년인턴' 60명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채용 분야는 ▲사무·기술 보조(26명) ▲말산업 전문(16명) ▲AI·빅데이터 전문(3명)
-
인천공항공사, AI·딥테크 스타트업 육성 본격화…스타트업 육성사업 참여기업 모집
인천공항공사, AI·딥테크 스타트업 육성 본격화…스타트업 육성사업 참여기업 모집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디지털 공항 혁신을 선도하고 공항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하는 '2026년 인천공항 스타트업 육성사업'의 참여기업을 모집한다고 4일 밝혔다. '인천공항 스타트업 육성사업'은 인천공항과 함께 성장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국내 스타트업을 발굴해
-
석유관리원, 고유가 속 취약계층에 에너지 행복 나눔 실천
석유관리원, 고유가 속 취약계층에 에너지 행복 나눔 실천 한국석유관리원(이사장 최춘식)은 최근 중동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독거노인, 소규모 복지단체 등을 대상으로 난방유 및 차량 연료유 지원에 나섰다. 이번 난방유 및 연료유 무상 지원은 중동사태 장기화로 인한 유가 상승이 지속됨에 따라 본사를 포함한 전국 10개 지역사업장에서 동시에
-
인천공항공사, 바탐공항과 교육협력 MOU 체결
인천공항공사, 바탐공항과 교육협력 MOU 체결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9일 바탐 항나딤 국제공항(Hang Nadim International Airport) 운영사인 PT BIB(PT Bandara Internasional Batam)와 '교육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협약식에는 공사 김범호 사장직무대행, PT
-
하나금융그룹, 포스코인터내셔널·두나무와 블록체인 활용 해외송금 판 바꾼다
하나금융그룹, 포스코인터내셔널·두나무와 블록체인 활용 해외송금 판 바꾼다 하나금융그룹(회장 함영주)은 포스코인터내셔널(대표이사 사장 이계인), 두나무(대표 오경석)와 금융·산업·디지털자산간의 융합 혁신으로 미래형 글로벌 금융 생태계 교두보 마련을 위한 3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은 하나금융그룹의 독보적인 외국환 네트워크,
-
"지리산이 키운 첫물 찻잎"…하동 야생차 수확 한창
"지리산이 키운 첫물 찻잎"…하동 야생차 수확 한창 하동군이 본격적인 야생차 수확철을 맞아,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야생 찻잎 채엽(찻잎을 따는 과정)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차 수확과 함께 하동야생차문화축제(5.1∼5.5), 별천지 하동 차문화관 등도 연계해 우리나라 차 문화 확산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동 야생차는 농약과 인위적 재배에 의존하지
-
한국마사회, 2026년 제1차 내부통제위원회 개최
한국마사회, 2026년 제1차 내부통제위원회 개최 한국마사회(회장 우희종)는 기관경영의 효율성 제고 및 경마사업의 공정성 강화 등을 위한 내부통제위원회를 개최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우희종 회장을 비롯해 임원진 및 주요 실·처장 등이 참석, 전사적 내부통제 강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올해 새롭게 수립한 내부통제 추진체계는
-
군산시, 국제 탱고 마라톤 유치로 '맥주·문화 도시' 도약
군산시, 국제 탱고 마라톤 유치로 '맥주·문화 도시' 도약 국제적인 탱고 동호인들의 교류 행사인 '2026 군산 탱고 마라톤(GUNSAN TANGO MARATHON)'이 오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군산비어포트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군산이 구축해온 '로컬맥주 도시' 브랜드를 국내외에 확산하는 계기로 주목받고
-
기장군, 보훈회관 건립 박차…신축부지 현장점검 나서
기장군, 보훈회관 건립 박차…신축부지 현장점검 나서 기장군(군수 정종복)은 보훈회관 건립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지난 23일 보훈회관 신축부지에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고 29일 밝혔다. 기장군 보훈회관은 장안읍 좌천리 271번지 일원에 연면적 약 1,526.08㎡,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군은 오는 6월 설계용역 완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
경기도, 시흥·성남과 '피지컬 AI 확산센터' 협약…제조현장 AI 도입 본격 시동
경기도, 시흥·성남과 '피지컬 AI 확산센터' 협약…제조현장 AI 도입 본격 시동 경기도가 로봇과 자율이동장치 등 물리 환경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을 산업 현장에 확산하기 위해 30일 시흥시, 성남시와 '피지컬 AI 확산센터 구축 및 운영 사업 추진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협약 기간은 5년이다. 이를 통해 도는 확산센터 핵심 인프라 구축과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