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색출’ 소동과 헝가리 반면교사

정부가 최근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로 내란 동조 공직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헌정 파괴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러나 “과도한 내란몰이” “공직자 솎아내기”라는 우려와 ‘적폐청산’의 정치적 논란이 재소환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과정이 정치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면 공직 사회의 안정성을 해치고 분열만 심화시킬 수 있다. 지금은 ‘응보’의 열기보다 ‘원칙’의 냉철함이 필요한 때이다.
행정학의 관점에서 핵심 기준은 ‘정치적 중립성’과 ‘절차적 공정성’이다.
첫째, 막스 베버의 원칙대로 공직자의 충성 대상은 정권이 아닌 헌법 그 자체여야 한다. TF의 조사 기준은 ‘소극적 동조’ 같은 모호한 정치적 잣대가 아닌, 반헌법적 범죄에 ‘명백히 가담’했는지를 입증하는 객관적·법률적 증거여야 한다. 그렇잖으면 공직 사회는 이념의 편 가르기에 휩쓸려 마비될 것이다.
둘째, 결과의 정당성은 ‘절차적 공정성’에서 나온다. 과정이 불투명하고 일방적이라면 ‘마녀사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제보 센터’ 운영이나 ‘개인 휴대전화’ 조사 등 현재 거론되는 방식은 절차적 공정성을 위배할 우려가 크다. 밀실에서 ‘솎아내기’가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진실 규명’과 충분한 해명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해외 ‘루스트라치오(공직자 정화)’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독일은 시민들이 확보한 구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의 방대한 ‘기록’이 헌정 파괴의 ‘객관적 증거’로 먼저 확보된 상태에서, ‘슈타지기록법’과 같은 엄격하고 투명한 법적 절차를 밟아 공직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감정적 보복이 아닌 ‘법치’의 회복을 목표로 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현재 ‘객관적 증거’가 사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정부혁신 TF의 상황과는 중요한 전제조건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독일이 이처럼 ‘객관적 기록’과 ‘엄격한 법’이라는 원칙을 지켜 성공한 반면, 이 기준이 무너진 사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헝가리는 ‘누가 공직자인가’와 같은 명확한 기준 수립에도 실패하고, 이 과정이 엘리트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과거사 청산’의 실패라는 상처를 남겼다. 반면 폴란드의 경우는 이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헝가리와 달리 폴란드는 공공·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조직을 정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핵심은 ‘사람’이 아닌 ‘법치’와 ‘절차’의 회복에 있었다.
정부의 TF 이름이 ‘헌법존중 정부혁신’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조사의 궁극적 목표는 특정 개인들을 처벌하는 ‘인적 청산(Purge)’을 넘어, 다시는 공직 사회가 헌법적 가치를 배반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제도 혁신(Institutional Reform)’이 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핵심이다.
‘내란 청산’은 단호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가장 헌법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번 TF가 과거의 정치적 보복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 사회의 헌법적 가치를 재확립하고 행정의 중립성을 다지는 ‘혁신’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용대 발행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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