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고성의 들녘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구릉 위에 점점이 박힌 봉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러나는 봉긋한 언덕들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 천오백 년을 품고 있는 세계가 숨어 있다. 이곳, 송학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의 중요한 한 갈래로, 소가야가 남긴 마지막 숨결이 서린 자리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이 지역의 지배층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잠든 곳으로 추정되며, 그 배치와 구조에는 가야인의 삶과 정신이 고요히 새겨져 있다.

고분들은 고성읍 송학리와 기원리 일대의 구릉을 따라 이어진다. 그중 산 정상부에 자리한 8기의 큰 봉분은 당시 지배계층의 위계를 드러내듯 묵직하게 솟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된 이 고분군은 아픈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와 유물은 후대 학계가 가야사의 빈틈을 메우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오늘날 세계유산으로 기록되며, 가야의 문화가 인류 문화사 안에서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
송학동 고분의 구조는 가야 특유의 수혈식 석곽과 목곽이 조화된 독창적 형식을 보여준다. 바닥을 촘촘한 돌로 다지고, 좁은 입구에서 깊숙한 내부로 이어지는 구조는 단순한 매장공간을 넘어서 사후 세계와 의례적 사유를 드러낸다. 300미터 이상 이어지는 고분군의 흐름은 소가야의 중심지가 이곳이었음을 말해주며, 이 일대가 오랜 세월 지역 권력의 심장부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주묘를 중심으로 작은 봉분들이 둘러선 집단묘는 공동체의 결속과 위계질서를 저장한 일종의 문서와 같다. 출토된 토기, 무기, 장신구 등은 가야가 일본 규슈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며 해상문화권을 형성했던 사실을 confirm해 준다. 고성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동아시아 해양 교류의 중요한 매듭점이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고분군 사이를 걷다 보면 봉분들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시간의 결이 고요히 배어 있다. 수많은 삶과 죽음, 기쁨과 패배, 번영과 쇠퇴가 층층이 쌓여 오늘의 우리에게 하나의 장대한 이야기로 남는다. 바람이 봉분 위를 스칠 때마다, 이곳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가야 문명의 찬란한 흔적이자 인류사의 일부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송학동 고분군은 묻혀 있던 가야의 시간이 세계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호흡을 얻은 공간이자,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조용히 일러주는 살아 있는 역사다. 눈앞에는 오래된 흙의 무덤이지만, 그 안에는 세계가 인정한 문명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 이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고분군은 말없이 묻는다. “당신의 역사는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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