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지금으로부터 꼭 60 여년 전인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 벽두 연두교서에서 새해를 ‘일하는 해’로 선포했다. 증산, 수출, 건설 등과 같은 단어가 풍미했던 그때 그 시절, 그 이듬해는 ‘더 일하는 해’로, 그리고 그다음 해는 ‘전진의 해’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감각으로는 아무리 뜬금없고 촌스러워 보여도 그게 한때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이었다. 착한 흥부 대신 놀부의 생활력이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 또한 1960년대 말이었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이면에는 이러한 전대미문의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 있었다. 그 무렵,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가시적 성과가 하나둘씩 드러나자 사람들 사이에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국가와 개인이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며 ‘엽전의식’으로 대변되던 자기 비하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는 실로 역사적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온 나라에 신바람이 불었고 온 천지에 일벌레가 늘었다. 농민이 그랬고 근로자가 그랬으며, 기업인이 그랬고 공무원도 그랬다.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지기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나라로 정평이 났다.
물론 그것에 어두운 측면도 분명히 있었으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이 대표적이다. 1970~80년대 유난히 거세고 거칠었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를 방증한다. 그 시련의 결과였을까, 지금 우리나라를 악명 높은 노동 착취 국가나 노조 억압 국가로 평가하는 시선은 국제적으로 거의 없다. 일하는 사람의 ‘천국’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지옥’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동 자체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혐로(嫌勞)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한국처럼 ‘워라밸,’ 곧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balance) 담론을 숭배하는 나라도 드물다. 70년대 말 영미권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원래 개인적 업무와 가족이나 여가를 위한 활동이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워라밸을 삶과 노동의 상호 배타적, 상호 모순적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은 삶 혹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좌파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초기 자본주의 노동 양식에 대한 반감으로 마르크스가 꿈꾼 이상향, 곧 “아침에는 사냥을 가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며,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즐기는 사회”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반기업 정서 및 규제가 만연한 나라는 열정적인 사업가를 기대할 수 없다. 획일적 주 52시간제 탓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근로자는 힘이 빠진다. 납세 없는 무상 복지·현금 복지 시리즈에 맛을 들이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노력을 ‘노오력’이라 빈정대는 가운데, 일도 안 하고 일자리도 찾지 않는 ‘그냥 쉬는’ 청년 인구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된 지도 오래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방식의 양정(糧政)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농민의 의지를 감퇴시키고 말 것이다. 보여주기식 고용 증대 차원에서 공무원 숫자는 급증했지만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의 당사자가 바로 그들이라는 내부 고발서도 시중에서 인기다.
한때 국민 모두 피땀 흘려 일했던 나라를 지금처럼 놀기 좋아하고 공짜 좋아하는 사회로 만든 데는 평등과 분배 가치를 앞세워 왔던 민주당 쪽 책임이 지대하다. 그런데 올 해 지방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재명 정부는 갑자기 경제성장론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느니, 국부는 기업이 창출한다느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느니 하며 평소와 다른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우측 깜빡이’를 켠다고 온 나라가 경제성장을 위해 과연 다시 뛸 수 있을까. 자립정신이나 자기책임 대신, 국가를 상대로 ‘응석받이’나 ‘떼쟁이’로 살아가는 법에 너무나 익숙해진 작금의 현실에서 말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성장을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지도자 스스로 근면과 성실, 그리고 정직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회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이다. 일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바로 그런 정신으로 지난날 우리는 지금 같은 경제 대국의 초석을 깔 수 있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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