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소통하는 세 가지 방식

요즘처럼 소통하기 좋은 시대는 없었다. 누구나 글을 알고, 미디어는 넘쳐난다. 수많은 말과 글이 전자신호의 형태로 허공을 날아다닌다. 인간관계는 교류가 많으면 대체로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은 타인과 소통하면서 안정되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도 이 시대다. 가파르게 치솟는 자살률은 사라짐을 통해 깊은 고독감을 단 한번 세상에 전하고자 한 이들의 흔적이리라.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세상을 듣지 못하고. 너무 쉬이 말을 섞어 마음을 통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고독감을 잊기 위해선 누군가와 서로 맞닿아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런 느낌은 진정성의 소통을 통해서만 생긴다. 그런데, 어느 시대건 일상적 수다로 마음을 통하긴 쉽지 않았는지, 진정성을 소통하는 특권적 형식이 시대마다 다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맺는 관계를 가장 중시했다. 폴리스의 공적 의제를 토론하고, 전장에 함께 나가면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진정성을 찾았다. 종종 동성애가 공공성을 매개한 사적관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남녀관계와 가족관계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이들에겐 정치적 참여가 진정성을 소통하는 시작이었다.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는 신과의 내면적 만남이 진정성을 소통하는 지배적 방식이었다. 그들에게 진정성은 신을 통해서만 소통되는 것이었다. 진정한 삶은 신의 뜻에 따라 사랑으로 관계 맺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현대인은 다른 방식으로 고독감을 잊고자 한다. 연애를 정서적 결핍을 메우는 종합영양제로 상상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TV드라마는 진정성이 소통되는 관계를 하나같이 연애로 설정하고, 최근에는 연애 컨설턴트란 직업과 연애학원까지 등장했다. 연애가 진정성을 소통하는 유일한 형식이 된 것이다. 과연 연애는 그리스인의 동지애나 중세인의 박애보다 진정성을 소통하는 더 나은 방식일까? 연애는 적어도 초기에는 성욕이란 강력한 천연접착제에 관계의 결속을 의지한다. 관계의 결속 자체가 진정성의 소통을 보증하진 않는다. 결속의 내용과 양상이 진정성의 소통 여부를 결정한다. 만나서 서로 깊어지고 사회에 좋은 울림을 주느냐가 관건이다. 성욕은 여기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정신적 비용 없이 외형적 관계를 강화시켜 주지만 그게 오히려 내면적 진정성을 희석시키기 쉽다. 연애의 평균이 ‘쉽게’ 만나 ‘어렵게’ 헤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적 환상이 깨지면서 그 자리에 남는 남루한 현실에 대해 서로가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소통되는 관계는 만나기 어렵고 헤어지기 쉬우며 오래 지속된다. 그건 관계가 투명하고 호혜적이어서 서로 빚이 없다는 얘기다.
연애는 사회적 공공성으로 매개된 동지애나 신성으로 매개된 박애보다 진정성의 소통방식으로 훨씬 불안정하다. 그리고 동시에 저열하다. 성적 교환의 늪에 빠져 진정성이 소통되는 몽상을 동어반복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의존이 깊은 사회일수록 고독감이 깊어지고 포르노가 넘쳐나는 이유가 무얼까? 진정성이 소통되는 상태를 사랑이라고 하면, 그리스인이나 중세인이 현대인보다 훨씬 사랑으로 충만했던 것 같다. 개인의 사랑도 사회 정의에 대한 열망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필요함을 알고는 있었으니까.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둘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진정성이 소통되는 관계를 열망하는 사람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날까? 연애학원에 등록해서 기량을 연마하는 사람일까? 한강에 투신한 사람를 찾다 우연히 발견된 익명의 시체에 마음을 주고, 민주주의의 기본이 유린된 정치에 분노하며 항거하는 사람일까? 왜 드라마에는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결혼한다고 믿고, 타인을 위한 일상적 헌신과 정치적 참여로 두 사람의 관계를 채워가는 커플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 걸까?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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