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배고프면 정신이 맑고― 여공의 노동 윤리, 산업을 떠받친 보이지 않는 규범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20 09:59

산업근로 현장.여공들의 모습



노동은 언제나 윤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의 노동 윤리는 법이나 제도보다 먼저 인간의 몸과 태도 속에서 형성되었다. 특히 여성 노동자, 이른바 ‘여공’의 노동은 말로 규정되기보다 침묵 속에서 완성된 윤리였다.


마산 한일합섬


1960~1990년대, 한국 섬유산업을 이끌던 마산 양덕동 한일합섬은 멈출 수 없는 공장이었다. 나일론 생산설비는 한순간의 정지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설비가 멈추면 원재료는 굳고, 공장은 붕괴된다. 그래서 노동 또한 멈춤을 허락받지 못했다. 밤낮을 가르지 않는 3교대 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산업의 전제였다.


이 구조 속에서 일하던 이들은 대부분 열여섯, 열일곱의 소녀들이었다. 전라도 섬마을과 충청도의 산골에서 가난을 짊어지고 떠나온 이들이다. 그들이 공장으로 들어온 이유는 단순했다. 집안의 생계, 형제의 학비, 가족이라는 이름의 책임이었다.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의 교훈은 이 노동의 윤리를 집약한다.

“어떠한 시련과 곤궁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소녀 이외에는 이 교문을 들어올 수 없다.”

이 문장은 격려이자 조건이었다. 여공에게 요구된 것은 기술 이전에 태도였다. 불평하지 않는 인내, 결근하지 않는 책임, 주어진 시간을 지켜내는 성실. 이들은 노동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맡은 몫을 다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공들의 윤리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것,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몸을 비우지 않는 것, 개인의 피로보다 공정의 연속성을 우선하는 태도. 그것은 산업을 유지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인한 도덕이었다.


흔히 산업화의 그늘로만 호명되는 여공의 삶은, 사실 산업을 지탱한 윤리의 근간이었다. 노동이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들은 몸으로 증명했다. 배고픔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던 집중력, 궁핍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던 책임의식. “배고프면 정신이 맑다”는 말은 미화가 아니라, 그들이 체득한 노동의 현실 인식이었다.


오늘 우리는 노동의 권리와 조건을 말한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동시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내적 규범은 무엇이었는가. 제도 이전에 산업을 떠받친 것은, 말없이 교대를 지키던 수많은 여공들의 윤리였다.


그들의 노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안정과 여유, 산업의 토대는 그들이 남긴 태도의 유산 위에 서 있다. 여공의 노동 윤리는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노동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청계 · 이상석 시인. 수필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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