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 매립은 진보였을까 — 마산 가포가 사라진 자리에서 _ 이상석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24 10:26




썰물이 먼바다로 쓸려 나가고, 간수 빠진 갯펄 위에서 게와 고동이 제 세상을 만난다. 그곳에 서면 문득 어머니의 양수처럼 짭짤하고 따뜻한 긴 생명의 기억이 밀려온다. 바다는 늘 개발의 대상이기 이전에, 인간이 태어나고 돌아가던 삶의 모태였다.


그러나 가포의 바다는 매립되었다. 외가의 터와, 바다를 메워 농장을 일구었던 가친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마천루처럼 솟아올랐다.

우리는 이를 ‘발전’이라 불렀고,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행정 용어로 포장했다. 하지만 그 말들 사이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포 본동은 한때 250여 호가 볕을 나눠 가지며 살던 자연부락이었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서 있었고, 실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동김씨와 배씨 집성촌이 이웃했다. 청량산과 갈마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사계절 마르지 않고 마을을 적셨다. 이곳에는 ‘쾌적함’이라는 단어보다,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이 먼저 있었다.



오늘날 가포라 하면 해수욕장, 국군통합병원, 국립결핵마산병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중의 기억은 늘 상징적 시설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 과정에서 본동은 역사에서 밀려났고, 마을의 기원은 행정 지도 밖으로 추방되었다. 개발은 공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위계까지 재편한다.


어린 시절, 가포 본동의 포구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남성동 선창에서 출발한 디젤엔진 여객선 ‘낙동호’와 ‘명성호’는 연안 주민들의 삶을 잇는 유일한 교통망이었다. 배가 들어오면 물자와 사람, 소식과 계절이 함께 도착했다. 공동체는 이렇게 이동과 기다림 속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개발은 이런 느린 연결을 비효율이라 규정한다. 갯벌은 ‘유휴지’가 되고, 포구는 ‘저활용 공간’이 되며, 마을은 ‘정비 대상 지역’이 된다. 행정의 언어가 삶의 언어를 압도하는 순간, 공동체는 해체된다. 보상금은 지급되지만, 관계의 값은 산정되지 않는다.



지금 그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는 안전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바다의 냄새도, 물길의 기억도, 함께 달려 나가던 아이들의 소리도 없다. 개발은 물리적 환경을 개선했을지 모르나, 삶의 결을 더 두텁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개발이 모든 가치를 대체해버리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말하면서, 정작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가포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어디에나 있는 도시 풍경’이 남았다.썰물 위에 남은 갯펄처럼, 기억은 여전히 드러난다. 매립된 것은 바다였지만, 지워진 것은 공동체였다.


어즈버, 그때가 옛날이다. 그러나 이 질문만큼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발전이라 불러왔는가.


청계 이상석 시인 수필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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