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③] 장옥관 시 ‘나는 드라이버’, 짐 자무시 감독 영화 ‘패터슨’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1-26 13:38

내 이름은 드라이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쓴 일상의 기록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나는 드라이버

ㅡ짐 자무시<패터슨>


장옥관


내 이름은 드라이버

버스를 몰지 제 꼬리 물고 우는

노란 고양이처럼

순환 버스를 몰지 마디마디

이어진 요일과 요일

하품 참으며 눈 감은 익숙한 얼굴들 

실어나르지

어둠에서 어둠으로 돌아가는

순환 버스

이마에 환한 노선표 켜고 달리지

버스에 풍선을 매달고

날아오르는 생각 따윈 아예 하지 않지

구름 위 개똥지빠귀의 비웃음

아랑곳하지 않아 왜냐면

보도블럭 틈새 민들레가 고개 내밀며

손짓하고

맨들맨질 닳은 돌멩이

강아지 오줌에 젖은

전봇대, 섬잣나무 잎새를 빠져나가는

실바람, 고사리손으로 시를 적는 꼬맹이가

귀갓길 날 기다리거든

그래, 누구든 이 노선을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메뚜기의 눈알 굴리면

우주의 큐빅 가질 수 있지

밤하늘 찢고 사라지는 유성처럼, 빗금처럼

나는 금맥을 찾지

하품할 때 드러나던 승객의 그 금니

보여줄까, 이 낡은 노트 속

빼곡히 살뜰하게 쟁여둔

쌀눈의 말 

'아하!'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영화 ‘패터슨’은 뉴저지주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운전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의 1주일 동안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버스를 운전하지만 시(詩)를 쓴다. 새벽 6시 15분에 일어나는 패터슨의 모습부터 보여준다.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다가 식탁 위에 있는 성냥갑 하나를 보고 영감을 얻는다.출근해서 직장 동료와 버스의 승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패터슨은 아침이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아내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들고 일터로 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 잠깐 짬을 내 시를 쓰고 버스를 몬다. 매일이 비슷한 듯 하지만 가만히 보면 패터슨의 삶 안에는 변주가 있다. 승객들은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핼로윈 분장 이야기를 하고 관심있는 이성 이야기를 하는 남자들도 등장한다. 날씨는 매일 맑기도 흐리기도 하며 조금씩 변한다. 


‘패터슨’은 다소 지루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영화다.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도 했다. 80년대 인디영화의 대표 감독 짐 자무쉬는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퇴근 후에는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분)과 식사를 하고 개 마빈(넬리 분)을 산책시키러 갔다가 단골 바에서 주인과 수다를 떨면서 맥주를 마신다. 이 영화에는 ‘기, 승, 전, 결’이 없다.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한번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일주일간 반복될 뿐이다. 


그 외에 다른 변수들이 생기기는 한다. 패터슨의 아름다운 아내 ‘로라’는 전업주부지만 꿈도 많다. 화가가 되고 싶고, 가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컵케이크 매장을 열고 싶어 한다. 패터슨은 자신과는 다른 목표의식 뚜렷하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아내의 꿈을 묵묵히 지원한다. 오랜만에 컵케이크를 팔아 돈을 번 로라는 기뻐하면서 그동안의 남편의 노고에 감사해하면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기분을 낸다. 사랑이 넘치는 부부다. 

영화 또다른 주인공 잉글리쉬 불독 마빈(넬리 분). 이 강아지는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있다. 잉글리쉬 불독 마빈(넬리 분)이다. 강아지 마빈은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개 연기 중에 탑이다. 칸 영화제 출품작 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개에게 수여하는 ‘팜도그(Palm Dog)'상도 받았다. 남여주인공의 연기도 좋았지만, 마빈의  연기는 너무 강렬했다. 마빈은 엄마 로라를 두고 아빠 패터슨을 질투하는 사랑스럽지만 심술궂은 어린 아들 같았다. 아빠와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은 힘으로 오히려 끌고 다니지만 패터슨이 바에서 한잔하는 동안 얌전히 기다릴 줄도 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마빈이 크게 한번 사고를 친다. 밤산책을 빼먹고 엄마랑 둘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러 간 아빠가 미웠을까? 패터슨이 짬짬이 적어 놓은 비밀 시집을  갈기갈기 물어뜯어 망가뜨리는 참사가 일어난다.태연한 척 하지만 속상하고 의기소침한 패터슨 앞에 한 동양인 시인이 나타난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아하!"라는 말과 함께 빈 공책을 선물한다. "아하!"의 의미는 어떤 걸까? 패터슨에게는 이봐요! 당신은 멋진 시인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관객에게도 이봐요! 당신 삶도 시처럼 아름다워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 ‘패터슨’을 보니 우리 삶에도 시처럼 운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 속의 운율은 안정감과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패터슨의 아내는 집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인테리어 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속에 패터슨이 아내가 인테리어한 집 안의 커튼과 그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패터슨의 눈빛은 안정감으로 평화로워지고 미세하게 달라진 소품을 찾는 재미를 느끼는 것도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점심을 먹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휴식을 취하고 흔히 쳇바퀴 도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만 이런 일상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삶의 작은 변화에도 ‘아하!’라고 외치며 감동하고 기록한다면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패터슨의 시각으로 보는 삶이라 그의 삶이 더욱 아름답고 시처럼 근사했는지도 모르겠다.영화를 본 후 가진 시인 장옥관 시인과 김중기 영화평론가의 대담도 재미 있었다. 장옥관 시인의 대담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창조의 행위라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움의 창조가 예술이다. 전에 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건 예술이 아니다. 그게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마찬가지다. 과거엔 예술을 모방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미술의 경우, 얼마나 똑같이 그려내는가 하는 게 작품의 우열을 결정했다. 문학도 인간의 삶과 심리를 얼마나 핍진하게 그려내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오늘날 예술은 기예의 차원에서 벗어나 콘셉트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은 뒤샹 이래 예술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개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창조의 개념이 더 적극적으로 추구된다. 왜 창조가 중요한가. 우리는 늘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이 생긴다. 우리의 완강한 고정관념과 상투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세계를 인식하려는 태도도 필연적으로 뒤따라온다. 익숙한 것만 추구하면 결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가 없다. 새로움이 없는 사회는 반드시 정체될 수밖에 없다. 꽝꽝 얼어붙은 북극 빙하 같은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는 게 예술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공중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표기가 있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동성애자라면 어떨까. 몸은 남자인데 내면이 여자라면 어느 쪽에 들어가야 하는가. 동성애가 병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이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북구의 나라들에선 공중화장실에서 남녀 구별을 없앤 지 오래됐다고 한다. 의식이 선진화되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경제 소득이 높아진다고 다 선진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국의 영화감독인 짐 자무시가 만든 <패터슨>(2017년)은 시를 쓰는 버스 운전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뉴저지 인근 패터슨시에서 버스를 몬다. 왜 하필이면 노선버스인가. 그것은 똑같은 패턴을 살아가는 우리의 반복적 일상의 삶을 은유한다. 늘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내가 챙겨준 샌드위치 도시락을 들고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해 아내와 하루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먹고 애견을 데리고 동네 카페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게 전부인 삶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밋밋한 반복이 아니다. 시를 쓰는 그는 온몸의 감각이 열린 상태로 살아간다. 승객들과의 대화에 귀를 열어두고, 사람의 표정이나 하찮은 풀포기에도 눈길을 던진다.


상투적인 지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이 보고 느끼는 구체적인 체험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루하루는 늘 새롭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대부분 일상의 노예로 살아간다. 이런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술가의 삶을 사는 일이 유일하다. 내가 평소에 하는 말이 있다. 시인은, ‘오늘 아침에 시를 쓴 사람’이라는 것. 등단 절차로 시인을 정의할 순 없다. 시는 시인의 명예를 장식하는 도구가 아니고, 나르시시즘이나 감정의 배설도 아니다. 일상의 매 순간에 시적인 것에 반응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 자신의 삶을 담보로 늘 새롭게 살아내려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우리 삶과 유리된 게 아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매순간 주변을 둘러보며 세계에 깊이 감응하는 자. 그런 삶을 지향한다면 누구나 창조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장옥관 시인)

꿈 

ㅡ영화 <패터슨>


장옥관


걸었지 목화 구름 위를  

한순간 까무륵 잠은 바다에 빠져든 거지 


근데 어딜 다녀왔어  

발목이 젖었네 이슬을 밟고 온 건가 

푹푹 빠져드는 구름밭에 온종일 헤맨 건가 혼자 어딜 다녀온 거지  


꽃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다  

돌아온 건가 다른 얼굴 되어 돌아왔네 꽃과 가지는  어젯밤 같은 이불 덮었는데 

깍지 낀 손 스르르 풀려 우리는  


어제의 가지에  

오늘의 꽃이 자리 잡았네  


검은 꿈 너머 흰 구름밭  

온통 헤매였다네  


알아볼 수 없는 어제의 얼굴로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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