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①] 차향과 시향이 흐르는 미도다방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2-01 09:17

40년 넘게 대구 진골목에 자리잡은 문화예술인 명소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미도다향


전상열


종로 二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鄭仁淑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어떤 햇살은 가지 끝에 걸려 있고

어떤 햇살은 벼랑 끝에 몰려있고

어떤 햇살은 서릿발에 앉아 있다

정여사의 치맛자락은

엷은 햇살도 알뜰히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 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얘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얘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 二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어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 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미도다방 단골 손님이었던 고인이 된 전상렬(全尙烈) 시인이 타개하기 직전에 발표한 ‘미도다향’이란 시다.


‘…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고…’


시인의 말처럼 다방의 주요 인사는 ‘노인’들이다. 여기에 언제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정인숙 여사가 있다.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니 들어오는 손님마다 하나같이 정인숙 여사부터 찾는다. 여사는 테이블마다 잠시 앉아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는 손님은 한명도 빼 놓지 않고 문 앞까지 나가 인사하며 눈을 마주친다.


대구 진골목에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도다방. ‘진골목’은 ‘긴 골목’의 경상도 사투리로, 이 다방은 예부터 대구·경북 지역의 문인, 화가, 정치인 사이의 명소였다. 


옛날식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달큰한 한약재 냄새가 코로 스민다. 차를 주문하면 ‘센베이 과자’가 함께 나온다. 단골 손님들은 주로 쌍화차를 주문한다.미도다방의 인기 메뉴 쌍화차

호두와 잣, 땅콩이 가득 든 대구 미도다방의 쌍화차.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 있는 쌍화차가 진국이다. 쌍화차가 나오기 전에 한 쟁반 수북이 쌓인 과자와 생강편을 다 먹고 나면 한 끼를 먹은 듯 속이 든든하다. 


1952년 개장한 현존 최고령 다방인 전주의 삼양다방. 광주 남선다방과 함께 전국 3대 다방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1956년 세워진 학림다방은 서울에 살아남은 다방계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곳이다. 

 

사실 미도다방은 1928년 개업했었다는데 일제 강점기 때 명맥이 끊겼다가 1982년에 새롭게 오픈한 곳으로 100년 역사를 가진 다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속설도 전한다.


종로2가 진골목의 미도다방에선 차향과 함께 예향이 흐른다. 탑골공원과 어학원이 밀집한 서울 종로가 아니라 근대문화거리로 유명한 대구의 진골목 종로2가다.


‘다방’이란 것도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일제식민지 시절 다방은 문학과 예술의 사랑방이었다. 문인들은 출간발표회를 다방에서 열었으며 이곳에서 시와 음악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80년대엔 음악감상실 역할을 하는 뮤직다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어서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테이크아웃 커피체인이 나타나면서 차츰 ‘다방’도 옛날 영화에나 등장하는 구닥다리가 돼 버렸다. 이러한 세파에도 미도다방은 꾸준히 자리를 지켰고 이제는 진골목의 명물이 됐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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