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근심을 씻는 자리, 소우정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04 20:32


조선의 선비들은 정자를 단순한 쉼터로 짓지 않았다. 정자는 삶의 태도이자, 시대에 대한 응답이었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세계와 거리를 조절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碧珍李氏(벽진이씨) 消憂軒(소우헌), 退憂軒(퇴우헌) 李道一 도일공파1591~1667)의 소우정(消憂亭) 또한 그러하다.


소우정은 그의 호 소우헌(消憂軒)에서 이름을 따왔다. ‘근심을 없앤다’라는 이 두 글자는 얼핏 세속을 벗어난 은자의 한가로운 선언처럼 들리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참 란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었다. 열두 살에는 피난길에 올랐고, 열일곱에는 의병으로 전장에 섰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자신의 창고에 있던 정곡 400석을 내어 군량으로 삼게 했다. ‘근심을 씻는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근심을 다 겪고 난 뒤에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경지였던 셈이다.


그는 학문에서도 한강 정구의 문인이었고, 인품과 덕행으로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끝내 벼슬길을 사양했다. 특히 효성이 지극해 ‘일필성문’이라 불릴 만큼 진정성이 남달랐다고 전한다. 나라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일화는, 그가 끝까지 시대의 아픔을 자기 몫으로 껴안았던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만년에 강가에 작은 정자를 지었다. 무릎 하나 겨우 용납할 만한 크기라 했으니, 위세를 드러내는 공간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강정(江亭)이라 불렀으나, 이내 소우정이라 이름 붙였다.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울부짖는 대신,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를 다스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여기서 ‘소요자적’은 도피가 아니라 성찰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근심과 분노, 불안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것을 씻어낼 ‘정자’ 하나 갖기란 쉽지 않다. 소우정은 물리적 공간이기보다,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 모든 책임을 다한 뒤에도 남는 상처와 좌절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에 대한 한 선비의 대답이다.


근심을 없앤다는 말은 근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근심을 직면하고, 감당하고, 마침내 자연과 시간 속에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소우정은 그렇게 말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는, 근심을 씻을 자리가 있는가.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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