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예향 마산에서 배운 글쓰기의 운명-청계 이상석 시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20 11:24


생애 첫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신 문단의 선배들께 인사하는 저자 이상석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의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건너는 일이다. 빛과 그늘, 환희와 상실,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오가며 자기 삶을 스스로 증언하는 일이다. 나의 스물두 살, 1976년 무렵의 마산은 바로 그런 경계의 도시였다. 전국 7대 도시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창동 거리는 예술과 낭만, 사색과 격정이 뒤섞여 숨 쉬고 있었다.


그 시대의 마산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었다. ‘가고파’의 시인 이은상, 『고향의 봄』의 동요 작가 이원수, 언어의 조탁으로 꽃을 피워낸 김춘수,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등 수많은 예인들의 숨결이 스며 있던 예향이었다. 예술은 특별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거리의 공기처럼 일상 속에 배어 있었다.


창동 한복판, 고려당 제과 2층의 ‘고려다방’은 그 공기의 진원지였다. 문인과 화가, 음악가와 지식인이 어깨를 맞대고 시대를 논하던 그 공간은 한 편의 문학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첫 개인 문집 『침묵이 흐르는 강가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국판 196페이지의 얇지 않은 책 한 권이었지만, 그것은 한 청년의 생애가 응축된 강물이었다.


 문단 원로들과 만찬장면

출간 한 달 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자 서예가였던 변지섭 선생과 함께 48점의 시화로 개인 시화전을 열었다. 시가 붓끝에서 그림이 되고, 먹빛이 다시 언어로 번지는 경험은 문학이 장르를 넘어선 ‘정신의 연대’임을 깨닫게 했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지만, 예술은 함께 숨 쉬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수필로 등단을 마친 뒤였다. 그러나 지인들의 권면으로 습작을 추슬러 시 부문에 다시 등단했을 때, 그 감정은 낯설면서도 숙명 같았다. 글은 한 번 선택한다고 끝나는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이 방향을 틀 때마다 다시 불러내는 또 하나의 자아였다.



2026년, 붉은 말띠 해에 나는 마산문인협회의 문인으로 이름을 함께하게 되었다. 봄을 두고 떠났던 고향집 마당을 다시 밟는 심정이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언어를 향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인문학은 결국 ‘자기 삶을 해석하는 힘’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젊은 날의 창동 거리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지나온 시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문장 속에서 다시 숨 쉰다.


사람은 백 년을 살지 못하지만, 한 줄의 문장은 세대를 건넌다. 그래서 글쓰기는 회고가 아니라 약속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악수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기다리는 약속.

나는 여전히 인생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문장을 건넌다. 강은 흘러가지만, 강가에 선 사람의 마음은 그 자리에 남아 또 다른 침묵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다시 한 줄의 문장이 태어난다.



청계 이상석 시인, 수필가(창원, 마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헤드라인 뉴스

한국매일뉴스
등록번호인천 아 01909
발행인최용대
편집인이원희
연락처010)8834-9811
FAX031)781-4315
이메일hangukmaeilnews@naver.com
사무실031-781-9811
사업자 번호583-06-03523
주소 인천 서구 원당대로 628 714호 보미 골드 리즌빌
한국매일뉴스

한국매일뉴스 © 한국매일뉴스 All rights reserved.

한국매일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