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감정’ 따라 움직인다

제목이 손짓한다. 1980년대식 진보의 자석(磁石)은 밀어낼 또는 거부할, 유혹이다. 정치를 이성적 행위로 믿는 1980년대의 유산들에게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일본의 정치학자 요시다 도오루가 쓴 책으로, 원제는 ‘감정의 정치학’이다)는, 한 울림이다.
이 책의 질문은, “정치란 왜, 어떻게 발생하는가”이다. 정치가 무엇이고,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존재와 당위는 그 다음이다. 질문의 전치는, 저자가 이성 또는 합리성이란 신화의 비판을 염두에 둔 탓이다.
정치를 이익의 계산으로 환원하는 자유주의나, 정치를 계급구조에서 도출하는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정치를 이해할, 변혁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마음이 이성과 감성의 복합체이고 따라서 상황마다 발현되는 감정의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정치는 본질적으로 “감성과 상징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인간은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다.” 이 책에서 길어 올린 한 문장이다. 어떤 가치의 좋음과 옳음을 동시에 느끼게, 믿게 만드는 정념의 세계관이 있을 때, 감성이 이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합리성의 감정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1980년대는 독재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란 희망이, 차이들의 공존에도 불구하고 시민이란 하나의 정치적 주체를 호명할 수 있게 한 사건의 시간이었다.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이 담론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던 시점이었고, 진보적 시각에서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선거라는 정치참여의 공간에서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은 하나가 아닌 여럿으로 분열했다. 이성으로는, 합리적 계산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좋음과 싫음이 옳음과 그름보다 앞서는 가치이자 감정이었다.
결국, 1980년대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구조적 제약을 넘어서는, 정치공간의 근본적 재편에 실패했다. 이성에 따른 명령을 정치라 생각한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이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에 몸을 맡긴 결과였다.
이후,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은 이익을 계산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인 두 길을 갔다. 하나가 이익연합을 확대하는 정치였다면, 다른 하나는 이익이 필연적으로 정치에 투사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전자가 타협적 야당의 길이었다면, 후자는 확장성을 결여한 계급정치의 험로였다.
“정치가 우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정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치에 있어서 감정이나 비합리성을 더욱 중시해도 좋을 것이다”라는 이 책의 언명에 따른다면,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이 우리를 생산하는 정념의 공동가치를 발명하지 못한 탓이었다.
민주화의 효과 및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도입으로 가속화된 계급격차를 내장한 개인화 그리고 한반도의 비대칭적 탈냉전 결과로 북한을 악으로 내면화하는 감정의 확산은, 부분적이지만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의 자기부정적 정치적 실천의 결과였다. 보수적 정치사회세력은 이 기회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체현된 목표를 반복하면서도, 방법의 혁신을 통해 포착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정념을 바탕에 둔 상징을 매개로 한 관계성”이라는 감정의 정치에 충실하고자 했다. 개혁과 대박과 같은 상징은, 모든 의제에 적과 동지를 나누는 이분법의 정치적 담론을 매개로, 감정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성공한 국가와 불행한 국민”이 책과 기사의 제목일 정도로, 대중의 분노와 공포가 도래했음에도,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이 공감과 희망을 배달할 수 있는 진정성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감정의 정치학’의 지적처럼, “공포의 근저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체념”이 있고, “원자화된 개인이 그 실존적 불안을 메우기 위해 공허한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는 구도”가 역사의 교훈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은 1987년 대통령선거 전야를 되풀이 하고 있다.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은 옳음의 독선조차 상실한 채, 싫음의 회로로 진입한 상태다. 반복되는 역사가 두 번 다 비극으로 끝나 오른쪽 날개 하나로 나는 새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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