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에 지다 / 여기자의 화장실 보초가 되다
소피와 나
📍 티지크자 Tidjikja-아타르 Atar. 458km. 스페셜 스테이지. 총 주파 10,578km.
사막에서 차를 수리해 새벽 3시 30분에야 비박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 신고 후 텐트도 치지 않고 맨바닥에 깐 침낭에 들어 별밭을 천장 삼아 잠이 들었다. 쇠약해진 몸이 아픈 건지 허기 때문인지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 한참을 몸부림치다 눈을 뜨니 새벽바람이 몹시 거세다. 바람이 훑고 간 침낭과 얼굴은 모래투성이가 되어있다. 손으로 모래 가루를 털어내는 것이 아침 세수다. 우리에게 양치 이외의 물 사용은 이 사막 한가운데서 꿈같은 일이다. 꼭 세수를 하려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 조난 대비용 45L 비상용수를 내려 조금 사용할 수 있을 뿐.
6시 30분. 임시 정비소 천막으로 가 타이어 4짝을 갈고, 가스 업소버 완충장치를 앞쪽 두 타이어만 갈아 끼우려 차 밑에 들어가 누웠다. 졸음이 몰려든다. 지금 며칠째 하루 2시간여의 수면으로 견뎌내고 있다. 내가 사하라에서 본 신기루는 반은 진짜 신기루였을 것이고, 반은 수면 부족으로 비몽사몽간 본 헛것이었을 것이다. 어떠하든 내가 살아남아 계속 달리기 위해선 신기루든 헛것이든 무시해 버리고 나침반 방향으로 가는 것뿐이다. 대회본부 브리핑에서는 오늘 구간이 가장 위험한 구간이니 누누이 조심하라 이른다. 브리핑장에서 AFP 종군 여기자 소피가 내 옆에 와,
“사바? 사바… 뚜아?”
하며 인사를 한다. 나는 귀찮은 듯 눈 대신 두 뺨을 비비며 졸리는 시늉을 하자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내게 살짝 건네준다.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다시 돌려주니 다 마시라 권한다. 아무튼, 소피는 끝내주는 홍일점 기자다. 본래 그녀가 나만 보면 “사바… 사바.”라고 하는 인사는 프랑스 사람들이 종일 입에 달고 사는 인사다. ‘괜찮아?’, ‘좋아?’ 그런 뜻인데, 옛날 일본 유람단이 프랑스에 처음 와 보니 모든 사람이 하루 종일 “사바, 사바”라는 말만 낮은 음성으로 자주 하는 걸 보곤 ‘사바사바한다’는 비어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까지 들어와 누구와 은밀히 작당한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정말 소피는 나만 보면 사바사바다. 내게 그녀가 특별히 친절한 이유가 있다. 이 넓은 사막 평지에 여자가 마땅히 볼일을 볼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3~4km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소피는 곧잘 나를 멀리 데리고 가 뒤로 돌아 가리개 겸 보초를 세우고 볼일을 본다. 이제 제법 나도 이골이 났고, 사막 판에서 여자 혼자 얼마나 힘들까를 동정해 놈들이 뭐라든 소피에게 기꺼이 그 봉사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나만 보면 “사바, 사바(괜찮아? 괜찮아?)” 하며 애교 넘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산전수전 다 겪어 눈치 빠른 노련한 기자로, 동양인이고 은밀해야 할 생리 현상을 감히 빈정거리지 못할 나를 택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녀 또한 유익한 경주 정보를 자주 내게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이후 나는 파리로 돌아가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과 저녁도 먹고 카페에도 갔었지만, 나는 한 번도 사막 판 화장실 보초 에피소드를 그녀 친구들에게 꺼내본 적 없다. 경주 주자가 비박 장소에서 여기자 화장실 가리개, 보초 서준 일은 나도 좀 자존심 상하는 어설픈 얘기이기도 했으리라.
31.24km. 평균 진행 방향 0°. 각도 깊은 돌멩이 밭과 마른 와디의 연속. 차가 굴러만 가주고 시간만 가주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로드 북에는 위험이라는 표시가 새로운 안내 때마다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마른 강 건너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돌산이다. 벌써 숨이 차 온다.
66.20km. 칼날 같은 돌무더기 산등성이. 한 벼랑 한 벼랑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또 공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강 옆 산허리에 붙다 실패한 경주자들이 건설 현장 인부들처럼 삽질과 곡괭이질로 어지럽다.
“제길… 이게 어디 자동차 경주냐…? 막노동에다… 대체 차를 가지고 등산을 해야 하다니….”
신경질이 절로 나 머리에 김이 날 지경이다.
“이 대회 만든 놈부터 나까지 다 미친놈들이야. 야, 너도 마찬가지야, 인마!”
나는 곡괭이질을 하다 말고 제롬에게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질렀다. 제롬은 삽질을 하다 파낸 돌 하나를 들고 와서 내게 건네고선 그 돌에 내 머리를 부딪쳐 보라 한다.
“다카르 정신병원까지 갈 필요 없을 듯해. 전기 충격 대신 이 돌로 해 봐. 넌 이 충격 요법이 더 나을 것 같아, 인마.”
관능의 사막, 그 여인의 아름다움
새벽에 갈아 끼운 타이어가 다 닳고 찢어졌다. 모리타니아 사하라 산맥 계곡은 지나는 여행자가 통행세 대신 죽음이나 그에 상응하는 수고를 바쳐야 한다. 수많은 낙타 대상들이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했고, 유럽에서 온 탐험대들이 이곳까지 와 물이 떨어져 되돌아가지도 못한 채 아사했던 곳이다. 우리 경주자들에게도 가공하리만큼 넘기 힘든 마의 벽이다. 모래와 날 선 돌멩이들 사이에 깊이 박힌 타이어는 죽는시늉으로 차체를 떨며 빠져나오려 하지만 타이어는 연기만 내뿜는다.
98km. 돌투성이 사막은 차가 빠지는 것도 지옥이지만, 그 위를 터덜거리며 달리는 성가심도 충분히 미칠 지경이다. 북쪽 능선 공격에 3시간을 허비했다. 능선을 넘어 황토빛 모래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니 예닐곱대 차들 주자들이 삽질을 해대고 있다. 30° 이상 경사를 잘못 밀려내려 아래쪽 와디까지 내려온 것이다. 아서라. 분명 저들은 마른 강 아래까지 가서 돌아와야 할 일이다.
119km. 지형지물이 없어지고 아득한 열린 공간 속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빠져나온 계곡 끝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경치가 우리를 맞이한다.
정녕 처녀의 젖무덤을 닮은 모래 봉우리들이
까마득히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그 많은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의 젖무덤을
차마 오르지 못하고 빠져 돌기만 했다.
“인마, 너 왜 그래 운전을…?”
제롬이 돌았냐는 표정으로 투덜댔다.
“작은 건 치고 넘어. 시간 없어, 인마.”
“야, 제롬… 치고 넘기에는 너무 예쁜 처녀 가슴 같잖아…?”
“야 인마, 너 또 미쳤구나. 확실히 미친놈. 미쳐도 이젠 색색깔로 미치는구나. 맙소사! 저게 처녀 가슴이라고? 아이쿠 하느님 쯧쯧쯧.”
정말 그 모래 봉우리들은 처녀의 예쁜 젖무덤을 너무나 닮아 험한 차로 쳐 올라 뭉개기엔 아깝고, 그러면 내가 무슨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아 차마 마음만 조마조마. 바람이 사막 모래를 제 맘대로 휙휙 그어 만든 기막힌 예술품이다.
“야, 니스 칸느 해변(그곳 해수욕장은 여자도 남자도 하의 한 조각만 입고 수영함.) 여자들 것보다 훨씬 낫다 야. 짝짝이, 처진 것들보다… 야, 봐 인마, 이건 선탠 잘한 완벽한 처녀 젖가슴이야… 흐흐흐.”
제롬이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놈의 관자놀이에 또 송곳을 파더니 핸들을 빼앗았다. 그리고 정말 스스럼없이 그 젖무덤들을 잔인하게 뭉개 부수며 힘껏 치고 나갔다. 못된 놈.
196km. 몇 번 사막이 열렸다 닫혔다.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것도 의문이 들 만큼 혼돈이 왔다. 최근 만들어진 모래 산줄기들을 헤쳐 나오며 로드 북과 지형이 대체 맞질 않는다. 구간 2~3km마다 나침반 방향을 40~340°로 수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혼돈이 온다. 당황스럽다. 여기서 길을 잃게 되면 이젠 큰일이다. 한계 벌점 72시간 중 60시간이 넘은 상황에서 또 몇 시간을 벌점으로 받게 된다. 지표에 난 다른 차 자국들도 다 제각각이라 어느 놈 자국이 바른 방향인가를 알 수가 없다. 내가 갈 방향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여러 대의 차가 지나간 자국이 나 있을 땐 갈등으로 난감해진다. 지금이 그 상황이다. 제롬과 나는 어지럽게 비껴간 차바퀴 자국 중 많은 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을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최고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 주자는 군중심리의 마력 때문이랄까, 아니면 막막한 사막에서 혼자 당할 조난의 두려움 때문에 내가 정한 나침반 방향을 무시하고 싶어진다. 그리곤 결국 많은 차가 지나간 그 바퀴 자국을 따라가게 된다.
249km. 길을 잃었다.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선물을 달라 조르고 있다
사막 양치기 처녀의 애절한 구혼
총 주파 10.84km. 모래 먼지. 섭씨 45°.
갈수록 자동차들이 지나간 피스트 자국이 흐릿해지더니 사막 한가운데서 피스트가 사라져 버렸다. 그 많은 자국을 남긴 차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제롬과 차에서 내려 쌍안경으로 사라진 피스트 흔적을 찾아보았다. 차 지붕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 신기루가 바다와 섬을 만들어 아른거릴 뿐 아무것도 없다.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우리가 온 길로 원점 회귀, 방향을 다시 관측하기로 했다. 조금 전 차 위로 올라가다 범퍼에 짚었던 손바닥이 데인 것 같다. 아릴 만큼 화끈거려 핸들 잡을 일이 걱정된다.

249km. 처음 길을 잃은 곳으로 돌아와 차 깊숙이 넣어 두었던 정밀 지도를 꺼내 사막 판에 펼치곤 지도 위 우리가 있는 지점에 나침반을 올려놓았다. 의논 끝에 우린 220° 방향으로 정하고 가장 위험한 주행법인 직진 진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결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경주는 당연히 끝이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가다 기름이 떨어지면 그것으로 생과 사가 불투명해지는 무인 지경 사막 속에서 영락없이 조난이다.
297km.
지표가 점점 검어지고
한두 대 선두 차 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한참 후
지형이 끊어지며
아득한 절벽 계곡이 우리를 막아서
입에선 휘파람 같은 탄성이 나온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비교될만한
아찔한 절벽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가녀린 피스트가 보인다.
일단은 로드 북 책자의 지형지물로 복귀되어
조난은 피했다.
우리의 독도법이 정확했다.
해발 5~6백 미터의 지층이 끊어진
고원의 절벽 아래로
실핏줄 같은 좁은 피스트를
우리는 전율하며 감겨 내려갔다.
장갑이 땀에 젖어 축축하다.
마른 침이 넘어가는 목구멍 아래서
금속성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릴 때 본 만화책 속에 그려진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이런 것이었구나.
대부분 우리 카레이서들의 죽음은 일순간이지만,
여기서 떨어지면 바닥에 닿을 때까지
세상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고
하느님께 도착 신고를 하고도
시간이 남을 것 같다.
저녁 9시 4분. 비박 장소 칭게티 도착.
뜨거운 차 범퍼에 데인 손바닥처럼 운전으로 곤두섰던 흥분 상태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아카텔사 전용기 조종사가 얼음에 채운 맥주 캔을 건네주어 마셨더니 속이 좀 가라앉는다.
마을은 먼지 속에서도 활기가 있고 사람 사는 동네 같다. 아주 험하게 헐벗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 식사 후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더니 동네 청년들과 여자들이 우리 차 쪽으로 몰려왔다.
이곳 모리타니아는 유럽 사람의 피가 섞여서인지 얼굴이 서구형이고 가무스름하니 예쁜 처녀들도 곧잘 눈에 띈다. 기름을 넣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차 안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차 구경을 하는데 그중에 참한 처녀가 차 안을 한참 들여다보길래,
“여… 아가씨 예쁜데….”
하고 무심코 했던 말이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정색을 하고 날 바라보며, 정말 자기가 예쁘냐고 물었고 정말 자기가 예쁘면 자기를 당장 데리고 가라 한다.
“암양 두 마리만 사 주면… 그걸 아버지에게 주고 난 운전수 아저씨를 따라갈 수 있어요.”
또 한 번 놀라는 내게 그녀는 정말이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조수석에서 우리 얘길 멍하게 듣고 있던 제롬은 눈을 꾹 감아버리더니 의자 아래로 몸을 내리곤 말이 없다. 폴 고갱이 아내 테하루라나를 처음 구두로 소개받았을 때 그녀의 어머니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인즉슨,
“나이가 젊은가요?”
“예쁘게 생겼나요?”
“몸은 튼튼한가요?”
그리고 그날 그는 테하루라나를 25km 떨어진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데 이 아가씨는 고갱도 무색할 만큼 초스피드다.
“아가씨는 예쁘지만 나는 위험한 카레이서가 직업이라, 아가씨는 분명 생과부도 될 수 있을 테니 생각 접어요.”
모래사장에 빠진 차 아무도 그를 꺼내 줄 수 없다. 끌어내 주던 트럭마저 모래에 빠져 버렸다. 전신 망고 끝 대서양까지 왔는데...
아침 추위에 움츠리며 바다에 나갈 일이 아득하다.
처녀는 사라져 버렸고, 기름을 다 넣고 떠나려는 내게 그녀가 이번에는 그녀의 오빠를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 자기 동생이 이 마을 최고 미인이니 암양 두 마리만 사 주고 동생을 데리고 가라 간곡히 청한다. 기가 막힌다.
“아이구 불쌍한 처남, 집도 지어주고 날 평생 먹여 살려준다면… 이곳에 장가올 수 있겠네만….”
그는 쾌히 그렇게 하란다.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타고 있는 이 차만 가지고 오면 택시 운전사로 아주 잘 살 수 있단다. 나는 기절하는 시늉을 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제롬이 그들을 간신히 달래 보낸 후 내게 독설을 퍼부었다.
“야, 이 노란 멍청아, 아주 출세했구나.”
“모리타니아 택시 운전사 하며 잘 먹고 잘 살아 인마!”
“….”
“근데 인마, 너 지금 장가갈 기력이나 있냐?!”
“다 죽어가는 놈이 여자라면… 쯧쯧쯧.”
최종림 작가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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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중동 하늘길·호르무즈해협 막혔다… 이란 사태에 산업계 초비상
중동 하늘길·호르무즈해협 막혔다… 이란 사태에 산업계 초비상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공격을 주고받으며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된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남성이 에미레이트항공 두바이행 항공편이 결항된 전광판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공습과 이란의 중동 지역 미군기지에 대한 반격이 이어지는 등 중동 정세가 요동치며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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