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경제형벌

17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신교와 구교 간 30년 전쟁으로 인해 무려 800만명이 희생됐다.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루이 14세는 대포에 'Ultima Ratio Regum(왕들의 최후 수단)'이라는 라틴어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표현은 훗날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형법의 대원칙으로 이어졌다. 형벌은 다른 방법을 모두 사용한 뒤 마지막으로 꺼내는 '마지막 카드'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첫 번째 수단'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414개의 경제 관련 법률에 약 6000여 개의 형벌 조항이 있다. 규정이 모호해 죄가 되는지 알기 어렵거나 단순한 행정 절차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와 국회에서 각각 경제 형벌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정부와 국회가 동시에 경제 형벌 개선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데, 그만큼 기업 현장에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거나 현장에서 부작용이 큰 불합리한 과제를 선별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경제 형벌 중 시급히 개선해야 할 대표 사례로 배임죄가 꼽힌다. 기업의 합리적 판단이 사후에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형사책임으로 비화돼 투자 결정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배임죄 성립 여부가 논란이 되며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가중처벌 규정을 폐지하고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다른 법률 간의 중복 제재 문제도 크다. 실제로 한 철강기업은 친환경 제품을 과장 광고했다는 이유로 지난해에는 환경부, 올해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각각 제재를 받았다. 표시광고법과 환경기술산업법에 동일한 형벌과 행정 제재가 중복으로 규정된 탓이다. 해당 부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규제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동일한 사안으로 이중 처벌을 받는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형벌이 일상적 규제 도구로 쓰이는 구조에서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경영의 불확실성 속에서는 혁신 속도도 둔화된다. 이제는 형벌을 '상시 처방약'이 아닌 '응급약'으로 제한하는 구조적 변화가 절실하다. 사실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3년간 205개 개선 과제를 도출했으나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것은 27건에 불과해 입법률이 13%에 그쳤다.
다행히 이번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과도한 경제 형벌을 정비해 투자·고용 등 경영 활동 위축을 막으라고 지시했고, 정부도 기업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1년 내 30% 개선을 약속했다. 다만 지난 정부의 입법률이 저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경제 형벌 절반 이상을 개선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실제로 30%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또한 TF를 구성해 이에 호응한 만큼 우리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와 혁신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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