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평칼럼] 세종은 침묵하지 않는다 -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12 09:36

공영방송의 외래어 남용과 공공언어의 붕괴

이미지 캡션=ai 제공



2026년, 훈민정음 창제 580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그 문자를 만든 정신 위에 서 있는가. 세종대왕은 단지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는 권력의 언어를 백성의 언어로 끌어내렸다. 한글은 지식의 해방이었고, 동시에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공공기관은 그 선언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최근 한국방송공사가 방영한 <역사스페셜>의 부제, “단종, 죽은 왕을 위한 파반느”는 단순한 표현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공영방송이 스스로 공공언어의 기준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파반느’는 서양 궁정 무곡이다. 


문제는 이 단어의 출처가 아니라, 사용된 자리다. 단종의 비극적 죽음을 다루면서, 우리 역사와 정서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외국어를 가져다 붙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맥락에 대한 무감각이며 공공언어에 대한 책임 방기다.


공영방송은 사기업이 아니다. 시청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역사적 비극을 설명하는 자리에서조차 외래어를 장식처럼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불신이거나 혹은 값싼 감각주의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리의 간판, 공공기관의 문서, 방송과 언론 전반에 걸쳐 정체불명의 외래어와 혼종어가 범람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공공언어 체계의 붕괴 신호다.


이 지점에서 교육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어 정책은 선언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방송과 공공기관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관리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은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직무유기에 가깝다.


또한 한글학회를 비롯한 관련 기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어를 연구하고 보존한다는 기관들이 공공언어의 왜곡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학문적 권위는 현실 속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물론 언어는 변화한다. 외래어의 유입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영역의 언어는 다르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기준이 무너지면 혼란이 뒤따른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바로 그 혼란의 시작이다.


이번 사안은 사과 한 번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한국방송공사는 해당 표현의 사용 경위를 명확히 밝히고, 공공언어 사용에 대한 내부 기준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교육부는 실효성 있는 국어 정책을 마련하고, 공공기관 전반에 적용 가능한 언어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해야 한다. 관련 연구기관 역시 감시와 권고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이며 사고의 틀이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존중하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세종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문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언어로 우리 자신을 말하고 있는가.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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