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대구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한 고모역
‘시(詩)가 머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져
고모역
고모역의 낮달
문인수
顧母,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 야트막한 고갯길이
비가 내리면 아직도 실제로 비에 젖는다. 수십 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고모동 일대는
훼손되지 않은 산과 들, 금호강 강굽이가
대구의 동쪽 관문을, 인터불고호텔 같은 건물들을 그럴듯하게
꾸며 주는 유일한 배경이다. 정작
문짝 하나 새로 달 수 없는 고모동엔 무엇보다
초라한 고모역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다. 바쁘게 살아온
그대 변두리의 쓸쓸한 취락, 허공의 폐역. 어머니를 돌아보라,
헌 집에 홀로 사시다 저 낮달이 된 지 오래다.
ㅡ시집 『배꼽』, 창작과 비평사(2008)
고모역
지난 1925년 설치된 고모역은 80년 역사를 간직한 채 2006년 폐역됐다. 대구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해온 역사적인 장소로 일제강점기 이곳이 징용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사실은 현인이 부른 인기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8년에 고모역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역사(115㎡)를 포함한 연면적 2229㎡의 공간은 전시관과 휴식공간으로 바꼈다. 전시관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 등 1930~50년대 인기가요와 함께 당시의 역사를 추억하는 공간으로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모역 역사 안마당에는 구상 시인의 시비가 있고, 1985년 대학가요제에서 「저 바다에 누워」라는 곡으로 ‘높은음자리’가 대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탄 노래 가사의 원작자이며, 대구권 철도 역사마다 시를 남긴 박해수 시인의 시비도 여기 세워져 있다.
백해수 시인의 시비 고모역
박해수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 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여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역이다
고모역에 가면
어머니의 손재봉틀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화물열차만
꽁지 빠진 새처럼
검은 물새떼처럼
허기지게 날아가는
그 옛날 고모역 선로 위에서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어머니의 눈물처럼 그렁그렁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는
슬픔처럼 비껴 서 있는 그 옛날 고모역에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고모령의 전해오는 이야기
「비 내리는 고모령(顧母嶺)」의 ‘고모령’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고개로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에 고개 령(嶺) 자의 합성어이다.
고모령에 얽힌 전설은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옛날 고모령에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지나가던 스님이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아서 현재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하여 흙으로 산을 쌓는다.
그때 쌓은 산봉우리가 오늘날 모봉, 형봉, 제봉 세 개의 산봉우리이다. 그런데 서로 공덕을 더 많이 쌓으려는 욕심에 남매가 높이 산을 쌓으려고 싸우는 모습에 실망한 어머니는 집을 나간다. 집 나온 어머니가 하염없이 걷던 길이 현재의 고모령길이고, 고개 정상에서 집을 뒤돌아본 것이 ‘어머니가 뒤돌아봤다’고 하여 고모령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징병가는 젊은이들이 탄 열차가 고모령을 넘어가는데 당시 증기기관차가 높은 경사의 고모령을 한 번에 넘지 못하여 고모령 부근에서 열차가 더디게 운행하였다. 그러자 징병 가는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어머니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감옥에 갇힌 독립투사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어머니가 고모령 고개를 넘으면서 아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는 전설에서 ‘뒤돌아보는 어머니의 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모령 고개에 담긴 어머니의 심정을 담아 현인이 부른 노래「비 내리는 고모령」이 창작되었다.
「비 내리는 고모령」의 가수 현인
이별을 상징하는 장소를 노래한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강점기에 이 곳이 징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 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런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나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장명등이 깜박이는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서린 하소 적어가면서/ 오늘밤도 불러본다 망향의 노래
1969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비 나리는 고모령》이야기가 고모역에 전시되어 있다.
1969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비 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사랑과 갈등, 이별의 이야기를 담은 멜로 영화로 김희라, 문희, 박노식, 독고성 등이 출연했다.
고모역의 재발견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고모역은 지역민의 향수와 추억 시대의 애환과 사연을 담고 있는 장소이며 역사,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고모역복합문화공간에서는 단절된 폐역사를 살아있는 역사로 재생하여 고모역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였다.
고모역복합문화공간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장소로써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역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문화의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24년 5월 대구시인협회가 대구 수성구 고모역 복합문화공간에서 시집 기증식을 가진 바 있다. 시집을 기증한 시인들은 이하석, 이기철, 장옥관, 박소유, 이규리 시인 등 대구시인협회 회원 166명과 김수복, 남진우, 도종환, 장석남 등 전국에서 다수의 유명 시인이 참여했다.
대구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한 고모역은 이제 ‘시(詩)가 머무는 고모역 대합실’로 꾸며져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며 시집을 읽을 수 있는 시민생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모역복합문화공간 내부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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