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원 건축물
진주시 남강로 626(남성동)에 자리한 청계서원(淸溪書院)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한 지역의 정신사와 인물의 기억이 중첩되어 축적된 문화적 장치다. 서원의 이름처럼 ‘맑은 시냇물’은 세속의 흐름을 씻어내고, 학문과 덕의 원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곳의 의미는 자연적 은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고려와 조선을 잇는 역사적 시간 위에 놓인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 서원은 고려시대 병부상서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진양부원군 은열공 관정 정신열 선생과, 고려 공민왕 13년(1364)에 목면(木綿) 씨앗을 들여와 재배에 성공하고 물레와 베틀의 보급을 통해 백성들의 의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진양군 문충공 퇴현 정천익 선생을 봉향하는 공간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의 업적은 단순한 개인의 공로를 넘어 국가적 생존과 민생 안정에 직접 연결된 실천적 지성의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목면의 보급과 방직 기술의 확산은 조선 이전 농업사회에서 매우 혁신적인 변화였다. 의복은 단순한 생활필수품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한 알의 씨앗이 “백성의 삶을 따뜻하게 덮었다”는 서사의 상징성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지식이 권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중의 삶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청계서원의 역사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조선 순조 33년, 영호남 유림들이 선현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61년 후손들의 복원 시도가 시작되어 경덕사와 정교당이 건립되었고, 봉남서당의 맥을 이어오다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정부 지원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숭은사와 전사청이 재건되며 현재의 청계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이처럼 청계서원은 단절과 복원의 반복 속에서 지속되어 온 기억의 공간이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복원의 조건이 되었고, 훼철은 침묵이 아니라 더 깊은 기억을 요구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이곳에서 음력 3월 15일마다 봉행되는 제향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희미해진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공동체적 행위다.
결국 청계서원은 학문과 충절, 그리고 민생의 실천이 하나의 공간에 응축된 상징적 장소다. 그곳은 과거의 인물을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우리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문해(門海)”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문(文)과 바다처럼 넓은 도덕적 세계가 만나는 자리이며,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을 향한 지향이 놓여 있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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