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A 아니라 B'… 그 둘은 동등해야 자연스럽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29 07:22

① 그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싶다. 여기서 A는 그 책이고, B는 이 책이다. 동등하다. 흠잡을 것 없는 문장이다. ②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이것도 마찬가지다. A는 '내가 예민(하다)', B는 '네가 너무(하다)'이다. 동등하다. 문제없는 문장이다. ③ 최근 경기에서 팀이 진 것은 선수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감독이 잘못해서이다. 어떤가? 역시나 책잡을 것이 없다.


'A 아니라 B' 꼴을 한 문장이 자주 쓰인다. 유감스럽게도 ①②③과 달리 실수도 잦다. 이런 사례가 그 전형이다. ④ 이번 사고는 시민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당국자들의 잘못 때문에 일어났다. '시민들이 잘못(했다)'이라는 절을 A에 놓고는 '당국자들의 잘못 (때문에)'이라는 구를 B에 두었다. 둘이 동등하지 않다. 문장이 균형을 잃어 이상해졌다.


'호응'에 대한 사전의 정의'호응'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동등한 A와 B가 바른 문장의 조건임을 새기며 ④를 다시 쓴다. 이번 사고는 시민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당국자들이 잘못해서 일어났다.(a) 이번 사고는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라 당국자들의 잘못 때문에 일어났다. 둘 다 길다고 느끼나? '잘못'을 줄인 대안 c를 보자. 이번 참사는 시민들이 아니라 당국자들이 잘못해서 일어났다.(c)


④를 바꿔 쓰길, '이번 참사는 시민들이 아닌 당국자들이 잘못해서 일어났다.' 하는 경우도 본다. '아니라'가 아니라 '아닌'을 쓴 것이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뜯어 보면 '시민들이 아닌'이 '당국자들'을 꾸미는 꼴이 어색하다. '아닌'은 '아니라' 자리를 대신할 때보다 A가 B에 포함되는 조건에서 따로 역할할 때 쓸모가 돋보인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 "봄도 여름도 아닌 시기"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결과"처럼 말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사전의 '통사론' 정의사전의 '통사론'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립국어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2(용법 편)』, 2010


2.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아니라'를 대신하는 '아닌'? (입력 2024.09.30 00:02)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094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0940


3. 한국경제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아닌'과 '아니라'의 차이 (입력 2018.12.17 09:01 수정 2018.12.17 09:01) -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8121470001


4.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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