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천문학적 숫자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7-11 22:38


천문학적 숫자





1980년대까지 알려진 지구에서 가장 먼거리에 있는 별은 인간의 관측이 가능한 최대한계인 우주의 지평선 92%쯤에 있는 PKS 2000-330이라는 준성(準星)이라고 한다. 최대의 망원경만으로 관측이 가능하다는 이 별은 약 1백억광년(光年)의 거리에 있다. 빛의 속도로 1백억년 동안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가리킬 때 흔히 ‘천문학적인 숫자’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가 쓰는 숫자의 단위는 겨우 조(兆) 정도가 고작이다. 돈이 흔해진 세상이긴 하지만 그 ‘조’라는 단위도 서민으로서는 쉽게 실감할 수 없는 숫자다. 나라예산 편성때나 겨우 들어볼 수 있는 숫자다. 요즘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반도체 부지에 2천조ㅡ4천조조원이라고 한다. 이 역시 천문학적인 숫자지만 쉽게 계산하면 만원을 만개 합친 것이 억(億)이고 그 억을 만만개 합친 것이 1조다.



물론 대수(大數)에서 쓰이는 단위는 ‘조’ 이상도 수없이 많다. 만만조가 경(京)이고 만만경이 해(垓)다. 그 위로는 자, 양(壞),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수(無量數) 등이 있다. 항하사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가리키는 항하에 있는 모래를 뜻하는 숫자로 흔히 무수, 무한 등의 비유로 쓰인다. 그러나 불가사의나 무량수쯤 되면 그야말로 불가사의의 숫자일 뿐이다.


어제 신문에 좀처럼 보기 드문 숫자의 단위가 등장했다. 무려 6천2백70경원이라는 엄청난 액수가 등장한 것이다. 20대 청년이 한 인터넷 게임회사가 운영하는 126개 게임 서버를 해킹, 약 6천2백70경의 사이버 머니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또 한 사람은 이 위조 사이버 머니를 팔아 1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대부분 ‘컴맹’ 신세인 ‘쉰 세대’들에겐 기사에 나오는 용어부터 생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다. 겁없는 젊은이들의 배포가 비록 사이버 세계이긴 하지만 천문학적 숫자가 아니고선 눈도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담대해진 것 같아 은근히 걱정스러워진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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