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제작 성장 이끈 순수 외주제…보완 논의 부상
프리랜서·협력업체 보호 방안 마련 목소리도
중앙일보·JTBC 사옥 [중앙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최근 JTBC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계기로 국내 방송 제작 생태계와 외주 제작 구조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JTBC 측은 방송 광고 시장 침체와 콘텐츠 제작비 상승 등 미디어 산업 환경 변화 속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협력업체 간 위험 분담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독립 제작사 육성과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순수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편성 의무제가 시장 확대에 기여한 반면 제작 환경 변화에 맞춰 외주 제작 종사자 보호와 지속 가능한 협력 구조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순수 외주제 20여년…콘텐츠 성장 이끌었지만 구조적 한계 지적도
현행 방송법 제72조와 방송법 시행령 제58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방송사업자에게 순수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방송사 중심의 제작 구조를 개선하고 독립 제작사의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강했다.
실제 외주제작 시장은 지난 20여년간 크게 성장했다. 드라마와 예능, 교양 프로그램 상당수가 외부 제작사를 통해 제작되면서 방송 콘텐츠 산업 규모도 확대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방송사의 비용 절감 과정에서 경영 위험이 외주 제작 생태계로 전가되는 부작용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JTBC 회생 신청 이후 제기된 외주업체와 프리랜서 종사자 문제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12일 "JTBC가 최근 파견직 종사자 제공 업체에 임금 지급이 어렵다고 통보했다"며 "이 업체 대표는 파견직을 철수시켜야 할지, 앞으로 JTBC와의 관계를 고려해 그대로 남겨둬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계약 구조상 방송사가 제작비 지급을 미루거나 중단하면 외주업체가 인건비를 먼저 떠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처럼 방송사의 유동성 위기가 협력업체를 거쳐 파견직과 프리랜서에게 연쇄적으로 전가되는 구조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AI 생성 이미지/챗GPT]
◇ "위기 부담 전가 우려"…방미통위도 외주 인력 보호 필요성 강조
정규직 직원은 근로기준법과 각종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상대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외주제작 인력이나 프리랜서, 파견직 종사자는 위기 상황에서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이 같은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방미통위는 지난달 24일 JTBC를 상대로 한 대표자 의견청취에서 정규직 종사자와 달리 법적 보호가 취약할 수 있는 외주제작 관련 파견직과 프리랜서 종사자 보호가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법원의 회생 절차 진행 과정과 향후 JTBC의 인력 운용 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들 종사자의 지위 안정이 실질적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 "제도만 원인 단정 어려워"…산업 변화 맞춘 보완 논의 확산
다만 일각에서는 순수 외주 편성 의무제보다 방송 광고 시장 침체와 콘텐츠 제작비 상승 등 방송산업 전반의 수익성 악화와 개별 사업자의 경영 전략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순수 외주 편성 의무제가 모든 방송사에 동일하게 적용돼 왔음에도 JTBC만 회생 절차에 들어간 점에서 제도적 문제만으로 JTBC의 경영 위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외주제작 확대 역시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일반적인 흐름인 만큼 제도 폐지보다 위험 분담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제도 자체의 존폐보다 순수 외주 편성 의무제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순수 외주 편성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국회 입법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통령령에 위임된 순수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 적용 대상 방송사업자 범위를 법률에 직접 규정해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자체 제작 여건이 열악한 지역방송사업자 등을 의무 편성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제작 부담을 완화하고 편성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지역방송 규제 완화와 적용 대상 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외주 제작 종사자 보호나 위험 분담 구조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JTBC스튜디오일산 [촬영 안 철 수] 2026.5
이에 단순히 의무 편성 비율이나 적용 대상을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외주 제작 종사자 보호 장치와 위험 분담 체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독립 제작사 육성과 방송 산업 발전이라는 제도 도입 취지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외주 제작 확대 자체보다 위기 상황에서 부담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JTBC 회생 사태는 개별 방송사의 경영 위기를 넘어 한국 방송산업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외주 제작 중심 구조의 명암을 다시 드러냈다.
독립 제작 생태계 육성과 방송사의 경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외주 제작 종사자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부실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순수 외주 편성 제도 개선 논의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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