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회복까진 아직 '먼 길'…"머릿속에 숫자가 둥둥 떠다녀"
주식 투자 손실 증가에 "우울증·불면·공황 환자 두배 늘어"
코스피 연이틀 폭락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코스피가 전장보다 360.42p(5.98%) 내린 5,663.24로 마감한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2026.7.29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채린 양수연 기자 = 지난 달 국내 증시가 기록적인 폭락을 겪은 뒤 마지막 날엔 급반등으로 마감했지만, 개인 투자자들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코스피는 연일 10.84%, 5.98%, 1.23% 하락한 뒤, 31일에는 17.91% 급등하면서 사상 최대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미 한 달여간 국내 증시에서 급락과 급등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졌다.
주식 창을 보는 피로감이 극에 달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2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전례 없는 증시 변동성 속에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매도 시기를 놓쳤다는 허탈감에 자책하고, 증권 계좌에 나타난 손실액을 보며 쌓이는 스트레스에 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투자한 직장인 김모(55)씨는 "수익이 계속 오르니 재능이 있는 줄 알고 현금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투자했는데 (최근 폭락으로) 손실이 커졌다"며 "출근해서도 하루에 주식 창만 8시간 넘게 본다. 사실상 중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씨는 "딸에게 돈을 빌렸는데 미안해서 전화도 못 하겠다. 속이 타들어 가 미치겠다"며 "체중과 머리카락이 빠지고 소화도 안 된다. 머릿속에 숫자가 둥둥 떠다닌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직장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들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에서 주식 하는 사람들 보면 얼굴이 바짝 말라가는 게 보인다"며 "장이 좋을 때는 모여서 주식 얘기하고 돈 벌면 밥도 샀지만, 지금은 다들 속앓이하면서 서로 말도 안 꺼낸다"고 했다.
"주식 팔아 내 집 마련"…3.7조 주택시장으로 유입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올해 들어 주식·채권을 처분해 마련한 자금 3조7천억원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부동산에 붙은 매매 관련 안내문. 2026.6.14 hwayoung7@yna.co.kr
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윤모(29)씨는 "증권사 앱에서 '5% 떨어졌다', '10% 떨어졌다' 이렇게 계속 알람을 보내주니까 더 불안해져서 (계좌를) 수시로 보게 된다"며 "최근에는 워낙 하루에 많이 떨어지다 보니까 더 자주 보게 됐다"고 했다.
윤씨는 주변 지인 중에도 딱한 사정이 많다면서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집 계약 직전까지 주식을 안 팔고 있던 지인이 최근 급락으로 수억원의 손실을 봐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주식을 팔아 아파트 잔금을 치르려다 타격을 입고 식음을 전폐한 신혼부부도 있다"고 전했다.
여름 휴가철인데도 투자 실패 탓에 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없어 휴가까지 포기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27)씨는 "내가 권유한 종목으로 친구가 지난 5월에 200만원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함께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이번에 손실이 나면서 여행 얘기는 싹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주식 투자 손실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병원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최근 투자 손실로 인한 우울감이나 불면, 공황 증상, 가족 갈등 등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아졌다"며 "장이 좋았던 6월까지는 환자가 하루 평균 5명 수준이었지만, 7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11명 정도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심하게는 삶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일부 투자자들이 극심한 우울감 속에 살아갈 의지를 잃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코스피, 17.9% 폭등하며 '불기둥'…역대 최대 상승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코스피가 전날보다 1,001.89포인트(17.91%) 오른 6,595.45로 장을 마감하며 역대 최대 상승률과 상승폭을 기록한 31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2026.7.31 mon@yna.co.kr
투자자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50% 이상 손실을 봤다는 이모(50)씨는 "약 20년간 주식 매매를 했는데 이렇게 크게 오르고 떨어지는 장을 본 적이 없다"며 "전략도 필요 없이 판단이 안 되는 시장이 돼버렸는데, 자산 대부분이 주식에 묶여 있어 불안감이 크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의 심리적 불안도 함께 커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박 원장은 "상승장의 도파민과 쾌감만을 보고 포모(FOMO·소외 공포감) 심리로 주식을 시작한 초보 투자자들이 많다"며 "손실에 대한 경험이나 면역력, 회복 탄력성이 없는 투자자들이 이 상황을 훨씬 힘들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또 "전두엽이 충분히 회복될 겨를도 없이 불안이 반복되면 우리 뇌는 당장 무슨 행동이든 해서 불안을 회피하려고 한다"며 "손실을 서둘러 만회하려는 과도한 불안이 더 위험한 방식으로 주식을 매매하려는 충동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투자 행태 자체가 중독의 양상을 띨 수 있다고 박 원장은 우려했다.
그는 "사실상 이와 가까운 질병은 도박 중독"이라며 "충동 매매를 하거나 레버리지 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식 중독' 진단하고 약물 치료나 금단 증상에 대한 인지 치료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장기적이고 건강한 투자 문화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교육과 사회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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