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㊳] 팔 년 묵은 아궁이에 다시 불이 드는 날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1 19:25

나이 육십 과부장가 든 김효만 씨 새 마누라가 생겼다

팔 년이나 묵혀둔 부엌에 무쇠솥을 다시 걸고

사람이 들어오니 오래 비어 있던 장소도 다시 제 쓸모를 찾는다

김효만씨 무릎 까진 날 

  

이진수


  동네에서 산 쪽으로 맨 끄트머리 집 나이 육십 돼 과부장가 든 김효만씨, 묵은 아궁이에 군불 지피느라 진땀깨나 뺍니다


  며칠 전 새 마누라 자리가 넌지시 안채보다는 사랑채가 거허기 좋겄다고 들녘도 훤히 뵈고 드나들기도 편허겄다고 했던 말 따라 이튿날로 팔 년 동안이나 안 때던 부엌에 무쇠솥 다시 걸고 뒷산 올라 어영차 나무까지 해왔는데


  무슨 일인지 김효만씨 궁시렁대는 소리 사립문 밖까지 나옵니다 어라 이노무 장작이 왜 이런댜 붙으란 불은 안 붙구 연기만 폴폴 지리고 자빠졌네 아궁이도 그려 아무리 새로 손봤다 혀도 쓰던 아궁인디 어째서 헛심만 빼내고 그러능겨

  그 바람에 도토리 훔치러 왔던 청설모만 화들짝 도망칩니다


  군고구마에 목 빼던 마누라 자리가 그 새를 못 참고 한 마디 던집니다

  쑤석거리기만 헌다고 불이 불겄슈 갈잎 쏘시개 먼저 타게 허고서나 장작을 들이밀던지 고구마를 넣던지 허야지 팔 년 묵은 아궁이가 어디 기다렸다는 듯 불을 들이겄남유


  김효만씨 이래저래 혼자 생각에도 민망합니다 육십 나이에 부엌 들어가 아궁이에 사정사정 군불 한 번 지펴보자는 요량이 밤 깊을수록 남 우습습니다


아무리 맘이 급해도 팔 년 묵은 아궁이에 쉽사리 ‘장작’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

‘동네에서 산 쪽으로 맨 끄트머리 집’이니까 그 집 살림 형편 보나마나 뻔하다. 게다가 나이조차 육십이라니 이런 헌 신랑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운 좋게 새 마누라 자리 얻어걸린 김효만 씨, 혹시라도 마음 바뀔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안쓰럽다. 안쓰러운 일 중 가장 안쓰러운 일이 제 몸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 허나 아무리 맘이 급해도 팔 년 묵은 아궁이에 쉽사리 ‘장작’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김효만 씨, 사정사정 아궁이에 군불 한 번 지펴보려는 진짜 속셈은 어디에 있나. ‘들녘 훤히 뵈는’ 곳에서 활활 불을 지펴야 올해 들녘에 풍년이 든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장옥관 시인)


장옥관 시인 캐리커처

김효만씨 무릎 까진 안쓰러운 사연을 탁월한 어휘력과 뛰어난 묘사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사실적이고 재미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쓰던 아궁이도 아니고 팔년 동안이나  쓰질 않은 아궁이 군불 지피느라 진땀빼고도 남았을 법 했겠다.


“사랑채가 거허기 좋겠다”는 새 마누라 말에 뒷산 올라가 나무까지 해 오는 모습이 가련하고도 애틋하다. 나무까지 해 왔건만, 헛심만 빼는 효만 씨. ‘장작’도 고약하고 ‘아궁이’도 고약해서 궁시렁대는 소리 사립문 밖까지 나가고 놀란 청솔모 화들짝 달아난다.


“쑤석 거리기만 한다고 불이 붙겄슈”


새마누라 강한 충고에 이래저래 민망하다. 육십 나이에 아궁이 붙들고 사정사정 하는 김효만씨 애꿎은 아궁이만 탓하는 불쌍한 남자여! 


입추가 지나고 무더위가 한풀 꺾인듯 하지만 아직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제15호 태풍 ‘찬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찬홈은 일본 열도를 지나 동해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어 우리나라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한반도에 직접 상륙할 가능성보다 동해안과 해상을 중심으로 강풍과 높은 물결, 너울 등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태풍의 진로는 유동적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기상정보에도 유의해야겠다. 


불볕더위도 태풍도 지나가고 나면 어느새 계절은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사람 사는 일도 그렇다. 오래 식었던 마음이라고 영영 불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갈잎 한 줌, 기다려주는 사람 하나 있으면 된다.


그날 김효만 씨네 사랑채 굴뚝에서는

얼마 만에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을까.


그 연기 너머로 들녘도 오래 바라보았을까.



박상봉 사회부장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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