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영왕은 가는 허리를 유난히 좋아했다.『후한서』는 "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니(王好細腰) 궁에서 많은 이가 굶어 죽었다(宮中多餓死)"고 전한다.
한나라 성제의 후궁으로 들어가 황후에 오른 조비연(趙飛燕)도 가냘픈 미인의 대명사다. 몸이 너무 가벼워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 춤출 수 있었다는 장상무(掌上舞)의 전설도 생겨났다.
'뼈말라'의 원조 모스의 데뷔 시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구에서 마른 몸이 미의 기준으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였다. 영국 모델 트위기(77·본명 레슬리 로슨)가 여성 고유의 곡선을 강조하던 모델계의 인식을 바꿔놨다. 168㎝의 큰 키, 잔 나뭇가지처럼 마른 체형 때문에 붙은 별명 '트위기(Twiggy)'가 그대로 그의 예명이자 신식 모델의 기준이 됐다.
1990년대에는 영국 모델 케이트 모스(52)가 깡마른 몸으로 모델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가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안짱다리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초점 없는 듯한 눈빛과 앙상한 몸. 마약중독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낯선 조합은 '헤로인 시크(heroin chic)'라는 새 유행을 낳으며 모델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 '헤로인 시크'가 대유행하면서 패션계의 마른 몸 숭배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2006년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20대 초반 모델들이 거식증과 영양실조로 숨졌고, 2010년엔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가 세상을 떠났다.
비판이 거세지자 프랑스는 모델 활동에 필요한 의사 진단서 발급을 법제화했다.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도 2021년 큰 키와 마른 몸매로 상징되던 '엔젤(Angel)'을 폐지하고 다양한 체형과 배경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최진실의 딸 최준희 [ 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요즘 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뼈말라' 열풍이 번지고 있다. 10대 아이돌부터 50대 중견 배우까지 불과 몇 달 사이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살을 뺀 상태로 대중 앞에 나서고 있다. SNS와 방송에선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가 120은 돼야 미인이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기준이 나돌고 있다.
케이트 모스가 "날씬함이 주는 기분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고 했듯 당사자들에게는 극단의 마름이 성취감과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대중에게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 이성을 집어삼킨 딱한 모습으로 비친다.
▷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한나라 때는 조비연이, 당나라 때는 양귀비(본명 양옥환)가 절세미인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수환비(燕瘦環肥)'다. 조비연처럼 작고 가냘프든, 양옥환처럼 키 크고 풍만하든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지만 건강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마지노선을 넘어서는 순간 아름다움은 추함으로 바뀌고, 감탄하던 대중의 시선도 걱정을 넘어 조롱과 외면으로 돌아선다. 멈출 때를 아는 절제가 미학의 극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