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전설 페데로 ] 라켓을 내려 놓은 뒤에도 꿈을 치는 사람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8-30 08:38


테니스 코트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던 사나이 ㅡ 로져 페더러


강한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기보다 정확한 타점과 부드러운 몸놀림, 한 손 백핸드와 예술 같은 발리로 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선수.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에서 태어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다.

그는 1981년 8월 8일 태어나 세 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했고, 여덟 살에는 바젤의 테니스클럽에서 본격적으로 라켓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테니스의 정상에 섰다.

페더러가 남긴 숫자는 그 자체로 전설이다.


그랜드슬램 20회, ATP 단식 우승 103회, 세계랭킹 1위 최장 연속 237주. 특히 윔블던에서는 무려 8차례 우승했고, US오픈에서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호주오픈도 6회, 프랑스오픈도 2009년 한 차례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그의 전성기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단 3년 동안 48개 대회에 출전해 34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38승14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그러나 페더러의 위대함은 우승 횟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테니스에 품격과 낭만을 더했다.


관중들은 그의 경기에서 승패만 본 것이 아니라, 공과 라켓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테니스의 황제'라 부르면서도, 동시에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붙였다.


1,000억 원이 넘는 상금,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큰 사업적 성공


프로 선수로서 페더러가 벌어들인 공식 상금만도 1억3천만 달러 이상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부는 코트 밖에서 만들어졌다.

포브스는 2026년 3월 기준 페더러의 순자산을 약 11억 달러, 우리 돈 약 1조5천억 원으로 추산했다. 


전성기에는 광고와 후원으로 한 해 1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유니클로와 10년간 3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롤렉스·메르세데스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도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왔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가 단순한 '광고 모델'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위스 스포츠 브랜드 On의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신발 개발과 디자인에도 직접 관여했다. 'THE ROGER'라는 이름의 제품을 직접 공동 개발하며 선수에서 기업가·창작자로 영역을 넓혔다. On 역시 그를 단순한 후원 선수가 아니라 'entrepreneur', 즉 기업가적 파트너라고 설명한다.


On의 THE ROGER 공식 컬렉션


즉, 페더러는 라켓으로 번 돈을 단순히 소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경험을 새로운 가치로 바꾼 사람이다.


돈이 향한 곳은 아이들이었다

페더러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재산의 크기가 아니다.

그는 2003년 로저 페더러 재단을 세워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남부와 스위스에서 어린이들의 교육 기회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25년 재단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양질의 취학 전 교육을 받은 어린이가 30만 명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직도 130만 명가량의 어린이가 기다리고 있다며 페더러는 "할 일이 아직 멀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이 참 페더러답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었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거대한 기념비로 만드는 대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실과 미래를 만드는 데 돈을 돌려놓았다.

그에게 돈은 목적지가 아니라 통로였던 셈이다.


은퇴했지만 삶에서는 은퇴하지 않았다


2022년 9월, 페더러는 레이버컵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라파엘 나달과 함께 코트에서 눈물을 흘리던 은퇴 장면은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라켓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삶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업과 재단 활동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다. 또 자신이 공동 창립한 레이버컵을 통해 테니스의 미래에도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뉴욕에서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이 테니스 코트에 울리고 있다.


2026 US오픈 기간에는 앤디 로딕·안드레 애거시·존 매켄로 등 전설들과 함께 특별 이벤트에 참가하고, 오는 8월 29일에는 미국 뉴포트의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공식 헌액된다.

선수로서는 이미 은퇴했지만, 테니스 역사에서는 이제 영원히 현역이 되는 순간이다.


두 쌍둥이 네 아이의 아버지


페더러의 또 다른 자랑은 가족이다.

2009년 옛 여자프로선수였던 미르카와 결혼해 쌍둥이 딸 밀라와 샤를린을 얻었고, 2014년에는 쌍둥이 아들 레오와 레니가 태어났다. 두 쌍의 쌍둥이, 네 자녀다.


그래서 은퇴 후 페더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가족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들이 학교와 방과후 활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새로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수많은 경기장을 누비던 사람이 이제는 자녀의 학교생활과 성장에 마음을 쓰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위대한 선수'보다 더 인간적인 페더러를 만난다.


바젤의 소년이 세계의 꿈이 되다


페더러는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그 주변에서 성장했다. 스위스 우표와 동전에 그의 모습이 등장했고, 고향 바젤에는 그의 이름을 딴 트램까지 운행됐다.

고향을 떠나 세계를 정복했지만, 고향과 스위스에 대한 뿌리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페더러의 인생을 돌아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한 소년이 라켓 하나를 들고 시작한 꿈이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꿈을 심어주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20개의 그랜드슬램 우승컵만이 아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테니스 라켓을 잡게 했고, 스포츠에서도 우아함과 품격이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엄청난 부를 쌓고도 그것을 교육과 미래세대를 위해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설은 우승컵의 개수가 아니다

페더러는 이제 45세다.

한때는 상대 선수의 서브를 받아내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꿈을 받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코트에서는 공을 네트 너머로 넘겼고, 인생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다시 세상 너머로 넘기고 있다.

20개의 그랜드슬램은 그의 기록이고,

103개의 우승은 그의 역사다.

그러나 그가 세계에 남긴 꿈과 낭만은 숫자로 셀 수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성공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을 다음 세대의 꿈으로 바꾸는 것은 성공을 넘어선 품격이다.

페더러가 위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테니스에서 은퇴했지만,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일에서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라켓을 내려놓은 마에스트로.


그러나 인생이라는 코트에서는 여전히 우아하게 공을 넘기고 있는 사람.

로저 페더러.


그가 이번 주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인의 마음속에 '테니스의 전당'을 하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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