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묻힐뻔한 사건 살인 밝혀내…"타살 의심돼도 보완수사 요구만"
'부실수사' 경찰 불신 속 걱정 커져…대검 과학수사부도 존폐 위기
부검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2024년 5월 강원 삼척시 자택에서 81세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5개월여 뒤 A씨가 스스로 목을 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검찰에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춘천지검 강릉지청은 현장에서 도구가 확인되지 않고 자살 흔적도 부족해 보인다며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A씨의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다 목을 졸라 살해했다'며 범행을 시인했고, 이듬해 1월 살인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검찰은 피의자를 두 차례 불러 진술을 분석하고 A씨의 생전 진료기록부를 확보하는 등 6개월간의 보완수사 끝에 올해 1월 A씨 아내를 재판에 넘길 수 있었다.
최근 '제주 실종 허위 종결 파문'으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변사 사건에서도 검찰의 검증 권한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들 논란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는 상관없다고 일축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문제라는 반박이 나온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10월 시행되는 개정 형사소송법 222조는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공소청 검사가 검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경 수사 준칙도 경찰이 변사사건 발생 사실을 검사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경찰과 검사는 각각 검시 또는 검증조서를 작성해 서로에게 보내고 사건 종결 전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찰은 이들 규정을 근거로 경찰의 시신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지휘해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2022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검찰의 변사자 검시 권한도 경찰에 넘기는 방안이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번 개정 형사소송법도 검사에게 변사체 검시 권한을 남겨뒀다.
그러나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검사가 변사체 검시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압수수색과 피의자신문 등 증거를 직접 수집할 방법이 막혀버렸다는 지적이다.
살인·마약 등 중범죄의 경우 경찰이 자체 종결하지 않고 모든 사건을 검찰에 넘기도록 하는 '전건 송치'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검시 과정에서 살인 혐의점을 발견해도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개정 형소법에 따라 검시 절차도 변화가 있을 텐데 정해진 내용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앞으로 검찰의 검시 권한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경찰이 검찰을 통제 장치로 생각하지 않으니 비상식적이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2년전 청주서 동생 때려 숨지게 한 60대 영장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서 춘천지검 강릉지청은 A씨 아내를 기소하면서 "형사소송법상 변사자 검시 규정 등에 따라 살인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며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가능했기에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 발생한 '청주 형제 살해 사건'도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자칫 '암장'(은폐)될 뻔한 살인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경찰은 타살이 의심된다는 부검 결과에도 "정신질환을 앓던 동생이 자주 자해했다"는 60대 박모씨 진술을 근거로 사건을 단순 변사로 종결했다.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결국 청주지검이 보완수사에 나서 2년여 만에 박씨가 동생을 살해한 정황을 밝혀냈다. 박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6년이 확정됐다.
그간 살인사건에서 여러 차례 핵심 증거를 찾아낸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도 존폐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대검 과학수사부는 범행을 부인하거나 엇갈린 진술을 하는 피의자의 생리적 반응을 측정·분석해 진위를 판단한다. '이태원 살인사건'과 '강북 모텔 연쇄살인' 등에서도 범인의 혐의 입증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와 중복으로 운영돼 비효율적인 데다 우회적인 직접 수사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대검 과학수사부 이관을 주장하고 있다.
이창현 교수는 "일선 경찰 수사도 마비될 가능성이 높은데 10월 2일 검찰 보완수사권이 없어진 뒤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바로 개선하는 게 관건"이라며 "직선 도로를 막아놓고 우회 도로만 자꾸 만들려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