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은 '기존 후보군서 선택' 입장…사실상 김민기 제청 압박 메시지
조희대로선 수용 어려운 카드…새 추천위 소집은 정면충돌 양상
김민기 등 자진사퇴 권하는 목소리도…'재판 지연' 초래 우려도
퇴근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6시 11분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대한 입장'에 대한 질문에 "우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2026.8.28 see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을 반려하며 사실상 '재제청'을 요구한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 앞엔 결국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에 추천한 대법관 후보 중 한 명을 다시 제청하거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추천 절차를 다시 밟는 방안이다.
조 대법원장이 후자를 택할 경우 청와대와 정면충돌이 심화해 갈등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 등 기존 추천자들이 자진 사퇴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제청을 반려한 지난 28일 퇴근길 취재진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다음 주 중 정리가 되면 공식적으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그가 주말새 '기존 추천자 제청안'과 '신규 추천위 구성안'을 두고 고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군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지난 28일 브리핑에서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추천위가 기존에 추천한 후보 가운데 한 명을, 구체적으론 당초 청와대가 선호한 것으로 알려진 김민기 부장판사를 제청하라는 취지로 풀이됐다.
실제 기존 추천 후보 중 이번에 반려된 손 부장판사와 김 부장판사를 제외한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박순영 고법판사는 현실적으로 제청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윤 고법 부장판사는 무작위 추첨을 거쳐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이 됐고, 박 고법판사는 2021년 3월부터 중앙선관위원을 겸하고 있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엮일 경우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공백 장기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사진은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6.8.30
하지만 조 대법원장은 김민기 부장판사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라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김 부장판사의 배우자가 현 정권에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판소원 등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갈등 국면에서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청와대가 제청을 요구하는 인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법관 증원법에 따라 향후 총 26명으로 늘어날 대법관 중 22명이 현 정부 임기 내 임명되는 점을 고려해 지금 후퇴하면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고심이 깔렸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에 대법원 안팎에선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와의 정면충돌을 감수하고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후보군을 다시 꾸릴 가능성이 적잖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조직법 41조의 2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하고,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기존 추천위는 이미 해산된 만큼 조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다시 행사하려면 새 추천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2012년 7월 김병화 당시 대법관 후보자가 각종 의혹 제기로 자진사퇴하자 대법원은 2주 만에 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꾸린 바 있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조직법 조항에 따르면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4명을 추천한 추천위는 지금 없는 상황"이라며 "청와대에서 재제청을 요청한 이상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추천 절차를 다시 밟는 게 법적으로도 깔끔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도 어느 정도 보장받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기존에 추천된 이들 중 한명을 제청하는 것도 법 위반으로 단정할 순 없다"며 "다른 사람이 아닌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을 여전히 선정하는 상황인 만큼 새 추천위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 대법관 후보자 관련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강유정 수석대변인이 28일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대법관 후보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8.2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조 대법원장이 결국 추천위를 새로 구성키로 할 경우 청와대와의 긴장 고조뿐 아니라 대법관 공백 사태 장기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로스쿨 교수는 "신규 추천위 구성은 분위기 쇄신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청와대와의 협의에 성공한다 해도 후보 임명까지 최소 한 달 반은 걸릴 것"이라며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 권리가 그만큼 침해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김 부장판사 등 기존 추천자들이 자진 사퇴하는 게 그나마 교착 국면을 해소할 현실적 방안이란 시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추천위를 새로 소집해도 기존에 추천된 이들을 신규 추천자에 포함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며 "이들이 추천위 심사에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퇴하는 방안이 가능은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명예교수도 "기존 후보자 전원이 사퇴하면 새로운 추천위 구성이 수월해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기존 추천 후보들에게 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일부 후보들이 반대했다고 하니 전원 사퇴가 실현될지는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줄다리기가 사법부 본연의 역할인 재판에 영향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정교유착·명태균 여론조사 수수 사건과 같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의 상고심 심리가 지연되는 원인으로 대법관 공백 장기화가 거론될 수도 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김 여사의 경우 오는 10월 말 구속기한이 만료돼 그때까지 선고되지 않으면 석방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