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부터 구두 제작…한 해 2천 켤레 만들어 팔기도
수십 년 단골들 발길에 "감사"…스포츠 댄스용 신발 주력
구수 수선하는 김정수 우신양화점 대표 [촬영 김진방]
(익산=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1956년 4월16일, 내 나이 16살에 처음으로 가피(구두 윗부분 가죽)를 만졌으니까. 올해로 정확히 70년이 됐습니다."
전북 익산시 창인동 옛 대전사거리에서 우신양화점을 운영하는 김정수(86) 씨는 손님이 맡기고 간 구두를 수선하면서 처음 일을 시작한 날을 정확히 떠올렸다.
우신양화점은 익산역 앞 옛 시가지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상점이다.
중학교 때 처음 일을 배우기 시작한 김씨가 옛 이도백화점 옆 '와싱톤양화점'에서 8년간 수련을 마치고 1964년 처음으로 우신양화점을 차린 이후 62년째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하고 있다.
김씨는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버지께서 중앙시장 자리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스승이신 김종학 가피사가 단골손님이셨다"면서 "가게 심부름차 스승님네 양화점에 들락거리다가 가피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양화점을 하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우신양화점 [촬영 김진방]
우신양화점은 겉모습만 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간판은 근래에 새로 달았지만, 김씨가 사용하는 재봉틀과 가죽을 놓는 선반, 구두 진열장까지 주인과 함께 세월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김씨는 은퇴하고도 20년이 훌쩍 넘었을 고령에도 매일 오전 8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양화점 문을 열고, 오후 6시까지 손님을 받다가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규칙적으로 일하는 것이 내 건강의 원천"이라며 "90살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직 그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에 걸린 적이 없다"고 '70년 근속 비결'을 소개했다.
지금은 원도심 상권이 약해져 이전만큼 벌이가 좋지 않지만, 1960∼70년대 한창 맞춤 신발이 인기를 끌던 시기에는 한 해 2천 켤레가 넘는 신발을 판매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이후 점차 기성화가 신발 시장을 점유하면서 주춤했지만, 발이 편안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의 우신양화점 구두는 지역에서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고수했다.
단골손님과 대화하는 김정수씨 [촬영 김진방]
인터뷰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신발을 수선하거나 새로 맞추는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우신양화점의 40년 단골인 천병한(71)씨는 "익산뿐 아니라 전주, 완주, 남원 등 도내는 물론 충남 논산 등 이 인근에서 우신양화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멋 좀 부린다는 사람이면 그의 구두를 집에 한두 켤레씩 꼭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단골손님의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김씨의 작업대 위에는 우신양화점을 거쳐 간 손님의 발을 본뜬 가피본이 셀 수 없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우신양화점 맞춤 구두 [촬영 김진방]
요즘 우신양화점의 주력 상품은 스포츠 댄스용 신발이다. 개성 있는 디자인과 기능성이 중요한 스포츠 댄스용 신발은 기성화보다는 맞춤 신발이 제격이다.
김씨는 "이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아직도 내 신발이 편하고 예쁘다고 찾아 주는 손님이 있으니 고맙다"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단골손님에게 멋진 신발을 만들어 주는 게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