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옷 입은 'K-로판'…'재혼 황후' 낯섦 딛고 글로벌서 날까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1-04 12:43

29억뷰 노블코믹스 원작 디즈니+ 시리즈…한국 배우들 서양 세계관 연기


신민아·주지훈 등 호화 캐스팅…감독 "어색함 함께 이겨내주길"


서양식 호칭·복식 등 이질감…"괴리감 메우면 로판 실사화 가능성 열려"


디즈니+ '재혼 황후' 스틸컷디즈니+ '재혼 황후' 스틸컷 [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폐하께선 절대 정부는 들이지 않겠다고, 제게는 선대황후의 불행을 겪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죠. 제가 변했다 하셨습니까, 변한 건 폐하십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황제의 집무실. 가상의 나라 동대제국의 황후 나비에(신민아 분)가 황제 소비에슈(주지훈)를 향해 서늘한 일침을 날린다.


공개 일자를 하루 앞당겨 3일 첫선을 보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재혼 황후'는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온 황제 부부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문을 열었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29억7천만 회를 기록한 동명의 인기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 웹툰)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서양식 궁정을 무대로 펼쳐지는 로맨스 판타지물이다. 황제가 도망 노예와 사랑에 빠져 황후에게 이혼을 통보하자, 황후가 이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이웃 나라 왕자와 재혼하겠다고 요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작품은 18∼19세기 유럽 궁정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한국에서 출발한 오리지널 K-콘텐츠다. 서양풍의 원작을 한국 전통 사극 등으로 틀어 각색했던 기존 사례와 달리, 가상의 서양 제국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실사화하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기획 단계부터 업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여기에 신민아와 주지훈, 이종석, 이세영 등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주축을 이루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디즈니+ '재혼황후' 속 주지훈디즈니+ '재혼황후' 속 주지훈 [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극은 원작에 없던 사냥터 액션으로 시작한다. 나비에가 사냥터에서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다.


땅속을 가르며 흙을 솟구치게 만들고 순식간에 사냥감을 끌고 들어가는 괴수의 형태와 움직임은 1990년 개봉한 미국 고전 SF 영화 '불가사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은 판타지물이란 장르적 정체성을 초반부터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상기시킨다. 다만 궁정 로맨스가 중심인 원작의 분위기와는 다소 결이 달라, 향후 어떤 서사적 복선이나 장치로 작용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괴수가 나타나자 소비에슈와 나비에는 서로를 먼저 살피며 오랜 세월 쌓아온 단단한 부부애를 보여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소비에슈가 아닌 정체불명의 흰 새가 날아들어 나비에를 돕는 연출은 공고했던 부부 관계의 균열과 새로운 인연의 등장을 알리는 복선이 된다.


실제 소비에슈가 사냥터에서 데려온 도망 노예 라스타(이세영)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부부 사이는 급격히 흔들린다. 황제의 냉대 속에 외로움이 깊어진 나비에 곁에는 한 마리 새로 변신한 서왕국 왕자 하인리(이종석)가 찾아온다.


창가로 날아든 새에게 '퀸'이란 이름을 붙인 나비에는 퀸을 매개로 이름 모를 상대와 비밀 편지를 나누며 위안을 얻는다.


디즈니+ '재혼 황후' 속 이세영과 주지훈(왼쪽부터)디즈니+ '재혼 황후' 속 이세영과 주지훈(왼쪽부터) [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웹툰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원작 팬들이 가장 우려한 대목은 하인리가 새로 변신하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물속으로 날아든 새의 깃털이 흩어지며 욕조 속에서 사람 형상이 나타나거나, 하인리가 서 있던 자리에 옷가지만 남는 등 직접적 묘사를 피한 연출로 우려를 덜어냈다.


독일의 성과 체코의 정원 등 해외 로케이션을 거친 이국적인 풍광과 화려한 드레스, 무도회 등 볼거리도 풍성하게 담겼다.


다만 서양식 배경과 한국 배우의 부조화는 여전히 숙제다. 서양 귀족 사회를 꾸며놓았지만 편지나 서책 등 소품에 적힌 한글이 어색함을 자아내고, 한국 배우들이 서양식 이름을 부르며 서양 예법을 따르는 모습도 초반엔 낯설게 다가온다. 일각에서 "잘 만들면 '브리저튼', 못 만들면 예능 '서프라이즈'가 된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앞서 지난 달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3화까지 선공개될 당시 주지훈은 "세계관이 어려워 출연을 몇 차례 거절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세영 역시 "매 순간이 고비였다"고 언급할 만큼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연출을 맡은 조수원 감독은 "미술과 공간, 세계관 구현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려 섞인 시선 역시 이미 예측하고 고민했던 부분"이라며 "조금 어색한 지점이 있더라도 보시면서 함께 이겨내 주셨으면 좋겠다"고 너른 시선을 당부했다.


디즈니+ '재혼 황후' 속 신민아와 이종석(왼쪽부터)디즈니+ '재혼 황후' 속 신민아와 이종석(왼쪽부터) [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럼에도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은 강한 편이다. 방대한 원작의 주변 인물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핵심 인물 위주로 관계 구도를 압축한 각색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극 초반의 낯섦을 딛고 몰입하게 만든다.


3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신민아는 "(실사가) 어떻게 나올지 우려와 기대가 있었다"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대본이지만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종석은 "가상의 설정이 조금 낯설더라도 그 자체로 즐기시면 분명히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고 했고, 주지훈 역시 "어릴 때 디즈니 작품을 보면 개연성을 떠나 우리를 꿈과 희망과 환상의 나라로 초대해 주지 않았나. '재혼 황후' 역시 우리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작품일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양식 세계관을 고수한 'K-로판(로맨틱 판타지)'의 파격적인 실사화 시도가 원작 팬들을 넘어 글로벌 시청자들까지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에선 '재혼 황후' 흥행 여부가 향후 로판 장르 실사화의 성패를 가를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웹소설 팬층과 실제 드라마 시청층 사이의 괴리를 연출과 스토리, 연기로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며 "만약 이 작품이 기존 드라마 팬들을 설득해 낸다면 수많은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웹소설들 역시 향후 영상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로맨스판타지는 웹소설·웹툰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은 장르인 만큼, 이번 시도가 성공한다면 지식재산(IP)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 장르가 단순히 서브컬처 영역에 머물지, 대중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시장의 판단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부작 '재혼 황후'는 3일 1∼4화를 공개됐으며 매주 수요일 2부씩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디즈니+ '재혼 황후' 포스터디즈니+ '재혼 황후' 포스터 [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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