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제작사협회 등 12개 단체 "제작 기반 고사 위기, 국가적 과제"
박해영 작가 "창작자들 다른 장르로 이동"…글로벌 OTT엔 "IP 수익 공유해야"
K-드라마 지원 촉구하는 송병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송병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드라마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11.4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K-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창작자 단체들이 "K-드라마 제작 기반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 중장기 투자와 지원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한국방송협회, 한국방송작가협회 등 드라마 제작 관련 12개 단체는 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의 위기는 한 업계의 경영난을 넘어, 한류와 국민경제가 함께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호소했다.
이들 협회 집계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불과 2년 만에 30%가량 감소했다. KBS·MBC·SBS 지상파 3사의 드라마 편성 역시 2012년 91편에서 2023년 32편으로 급감했으며, 주중 드라마 편성을 중단하는 채널도 잇따랐다.
드라마 제작 업계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의 제작비 급등, 광고 매출 감소에 따른 방송사의 편성·투자 축소, 제작사의 지식재산(IP) 및 후속 수익 확보 난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회견을 주관한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송병준 회장은 "작품이 줄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한 번 무너진 제작 현장은 복구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지금은 지난 영광을 돌아볼 때가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봐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K-드라마 지원 촉구하는 김태봉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회장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김태봉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회장(오른쪽 첫번째)이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드라마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11.4 ksm7976@yna.co.kr
작가, 배우, 스태프 등 직군별 현장 관계자들의 토로도 이어졌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을 쓴 박해영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저작권위원장)는 "자체 자금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국내 제작사나 방송사는 이제 하나도 없게 됐다"며 "저희 팀 보조작가 전원이 놀고 있고, 이야기 창작자들이 웹툰이나 게임 등 다른 장르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웅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이사장은 "드라마 편성 축소로 협회의 연간 저작권 사용료 징수액이 2024년 약 470억원 수준에서 이듬해 340억원 수준으로 약 130억원이나 급감했다"고 밝혔다. 김태봉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회장과 김종창 한국드라마PD협회 회장은 숙련된 스태프의 현장 이탈과 수백 명에 달하는 제작 인력의 생계 위기를 언급하며 대책을 호소했다.
단체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연간 드라마 제작 편수 회복을 위한 국가 정책목표 설정, 1조원 규모의 중장기 K-드라마 투자·지원체계 구축,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국회가 참여하는 범정부 종합 대응 체계 마련 등 3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업계도 제작비 구조 합리화와 공정한 제작 관행 정착 등 자구책 마련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K-드라마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드라마 산업계 12개 단체가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K-드라마 제작 편수 회복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지원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6.11.4 ksm7976@yna.co.kr
업계는 1조원 규모 지원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산출 근거도 내놨다. '연간 2천억원씩 5년간 분할 지원'하는 구조로, 편당 100억원 수준의 중저예산 드라마를 연간 40편가량 제작할 때 필요한 비용 약 4천억의 절반(2천억 원)을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 절반은 방송사와 플랫폼이 분담하자는 구상이다.
이 자리에선 글로벌 OTT 업계를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송병준 회장은 "글로벌 OTT와 국내 드라마 제작 업계가 IP 수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구조와 성공률에 따른 이익 배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송영웅 이사장은 "넷플릭스가 방송법 규제를 받지 않는 부가통신사업자라는 점을 들어 업계의 대화 요청을 피하고 있다"며 "실연자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위해 글로벌 OTT가 공식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제작 업계는 소수의 흥행작에 집중하기보다 국내 제작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병준 회장은 "100편 중 1편의 글로벌 대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모으고 일자리를 보장하는 나머지 99편"이라며 "글로벌 자본 종속을 끊고 토종 작품을 지키려면 연간 제작 편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