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은 그때 尹에게 기회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귀한 정치 자산을 김건희 특검을 막는 데 소진하고 무너졌다. ‘법과 원칙’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무너진 공정(公正) 회복’ 등은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이 기대했던 가치이자 그의 핵심 정치 자산이었다. 이 가치들이 김건희 앞에서 무력해지고 희화화되면서 정권 파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얼마든지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 2024년 총선 직전 친윤 핵심 정치인은 “총선을 치르려면 김건희 여사 특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특검을 수용하되 특검 수사는 총선 이후로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윤 정권 내부에도 합리적인 의견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고 꽉 막힌 정국을 뚫는 중대 발표가 나올 수 있겠다는 작은 기대도 가졌다.
그 기대는 며칠도 가지 못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김 여사 문제는 국민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 것에 격분한 윤 전 대통령이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나는 이 뉴스를 몇 시간 동안 믿지 않았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총선 직전에 이런 자해 행위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뉴스가 사실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수용의 결단을 내렸다면 부부 싸움은 했을지 몰라도 자신과 정부와 당,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신의 부인을 구했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수용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선거를 치렀다면 국민의힘은 승리는 못 했다고 해도 130석 이상은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 이 순간에도 대통령은 윤석열일 것이다. 김건희 특검은 그때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괴롭고 아프지만 진짜 살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믿는다.
윤 전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을 고언했던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필자도 이 칼럼으로 권했다. 그 고언에 윤 전 대통령은 분노와 욕설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특검을 수용하면 온갖 것을 다 파헤쳐서 일이 더 커진다’는 취지의 논리를 댔다고 한다. 김 여사에게 숨겨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른다. 특검을 수용했으면 김 여사가 기소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처럼 감옥에 가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고 해도 지금처럼 탄핵되고, 정권을 잃고, ‘내란 수괴’가 되고, 자신과 부인은 패가망신하고, 어쩌면 부부가 모두 감옥에 가고, 국민의힘은 폐족이 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왜 계엄을 했는지는 친했다는 권성동 전 원내대표조차 “지금도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 문제가 한 이유가 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국힘에서 이탈표가 나오면 특검법이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국힘 당원 게시판 사건으로 한동훈 위원장이 위기에 몰렸다. 한 언론이 ‘한 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반응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직후 계엄이 터졌다. 김건희 특검법이 계엄의 모든 원인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방아쇠가 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김건희 특검을 막으려 했는데 이제 거꾸로 몇 배의 강도로 특검이 시작되게 됐다. 특검법 공포를 위한 국무회의 참석자들은 윤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이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싶다. 김건희 특검법은 수사관 등 총규모가 무려 205명이고 수사 대상은 16개에 달한다. 내란 특검과 해병 순직 특검도 있지만 실제 핵심은 김건희 특검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 아닌 포클레인으로도 못 막게 생겼다. 윤 전 대통령의 거의 병적인 ‘부인 구하기’가 정반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 불행한 과정을 보면서 인간사, 세상사의 섭리를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서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호미로 막아야 한다. 김건희 특검법을 총선 전에 수용했으면 김 여사 국정 개입도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특검 수용으로 고개를 숙였으면 결국엔 이겼을 것이다. 무엇이든 막을수록 더 다가오고, 다 내려놓고 오라고 하면 오지 않는 게 세상이다. 좋은 일도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부인 보호도 그렇다. 참을 ‘인’ 자를 세 번 아닌 두 번만 썼어도 계엄은 없었다. 속담과 경구는 구태의연하지만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하늘의 굴레를 담고 있다. 자리가 높고 권력이 크다고 이 섭리 밖에 있을 수 없다.
많은 정권이 오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비슷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데도 모든 권력은 자신들에겐 끝이 없는 듯 행동한다. 올라갔으면 내려갈 수밖에 없지만 아래는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5년 세월은 금방 지나가는데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여긴다. 윤 전 대통령이 이 진리를 조금이라도 새겼으면 지금의 처지는 아닐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측근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구태의연한’ 얘기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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